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역사 등 좋은글 90

울산오씨의 연원과 상주 봉강리 학성사

상주시내-세천-봉강1리-봉강2리 별표 지점이 학성사인데 도로 바로 옆 종친회장 오병욱 님이 작성한 울산오씨의 연원과 정간 오식 선생님의 여러 자료를 올립니다. 1, 서 문(序文) 2, 정간(靖簡) 식( 湜)공의 관향(貫鄕) 가 ,울산오씨(蔚山吳氏)의 연원(淵源) 나, 관향(貫鄕)의 연혁(沿革) 3 ,정간(靖簡) 식( 湜)공의 상계(上系) 4 정간(靖簡) 식(湜)공의 일대기(一代記) 5 정간(靖簡) 식(湜)공의치적(治績) 가, 제도개선(制度 改善) 1)세제(稅制)의 설정(設定) 2) 합리적(合理的)인 행정구역(行政區域) 개편(改編) 나, 왜적침략(倭賊侵略)의 격퇴(擊退) 다, 외교활동(外交活動) 라, 귀감(龜鑑)의 청백리(淸白吏) 6, 정간(靖簡) 식(湜)공의 추모행사(追慕行事) 7, 실정(失政)에 의한 ..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박에스터)2

조선말에 태어난 김점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를 앞서 소개 하였다. 여기 그분의 생애와 사진을 추가 소개합니다. * 본명 - 김점동, 결혼후 미국에서 살면서 박에스터로 이름이 변경. 미국에서 여성은 성이 남편 성으로 바뀜. 남편의 이름이 박유산 이므로 박에스터로 바뀜. * 결혼사항 - 구한말 1893년 5월 2022년 2월 현재로 약129년전 박유산과 결혼. 당시 신랑 박유산 26세, 신부 김점동은 17세로 9세 차이, 박유산은 감리교 선교사의 월리엄 홀의 마부 출신.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보시는 분은 잘 보관하세요. 120년 전 사진입니다. *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의 삶의 소개 구한말 1877년 서울에서 김홍택의 셋째딸 김점동은 어려서 부터 영특하여 고종황제가 새운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당시 감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 김점동

1887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이화학당의 당장실로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곳엔 아이가 생전 처음 보는 파란색 눈의 서양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아이를 반갑게 맞으며 난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잡아당겼다. 그 순간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부인이 자신을 난로 속에 잡아넣어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 부인의 친절한 미소를 보며 아이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서양인 부인은 바로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었으며, 여자 아이는 이화학당 부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점동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개설된 시기는 1885년 8월이다. 그러나 첫 학생이 들어온 것은 그 이듬해인 1886년 5월이었다. ..

문랑과 효랑 이야기(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조선 시대 2효녀 문랑과 효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현사 근방의 이효각 감천면 도평2리 263-1에 위치 금오지맥을 답사하기 위하여 김천과 성주를 가다 보면 감천초등지나 도평2리 263-1의 위치에 청현사가 있고 근방에 이효각의 비석이 있다. 이곳은 숨막히고 처절한 사연이 전개되는 역사의 현장이다. 요새 같으면 나라가 떠들썩 할만한 큰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난 사실이다. - 사건 개요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녀 문랑·효랑 자매의 이효각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문랑·효랑 자매는 죽산 사람 박수하의 딸로 1709년(숙종 35)에 현풍 권력가인 청하 현감 박경여에게 선산을 빼앗겼다. 부호이자 권세가인 박경여가 박씨 선산에 자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였다. 이장을 중지할 것을 요..

장녀의 수필집 발간

교직에 있는 장녀가 어려운 직장생활 틈틈히 쓴 수필을 모아 수필집을 발간했습니다. 요새 학교생활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준이 크게 신장하여 학생교육이 매우 힘들과 까다로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잘 극복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희로애락을 글로 잘 표현하여 생활의 미에 이바지하는 글이다. 앞으로도 투철한 교육철학을 실현하며 더욱 많은 수필집을 발간하고 장녀의 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선 제목과 차례만 올립니다. 내용이 입수되면 추가로 올리겠습니다. 큰딸의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나날이 재미있고 보람찬 나날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건강, 행복, 행운이 모두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표지설명- 안동시 길안면의 만휴정(晩休亭)은 글자 그대로 느지막이 쉬는 정자다. 무오사화로 친구 김종직과 제자들을 잃은 후 청렴과..

공무원 연금지에 오른 이종하등산기 소개(제10권)​

공무원 연금지에 오른 이종하등산기 소개(제10권) ​ ☞ 퇴직후 등산하며 틈틈히 쓴 등산기를 책으로 그때마다 만들었는데 제10권까지 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매달 공무원 연금 월간 잡지를 받아 보면서 독자님의 출간 소식란을 보고 지난달 신청했더니 2021년 4월호에 소개 되였습니다. 내책자들은 비매품인데 이글들은 본 등산기에 이미 소개된 글들을 편집하여 올려서 만들었습니다. 책이름은 "이종하 등산기" 입니다. 사진으로 등록된 사진을 올려봅니다. ​ 국내 모든 직책의 현직, 퇴직 공무원들이 구독하는 월간 잡지 표지입니다(2021년 4월호) ​ ​ 56페이지 독자님의 출간 소식 사진입니다. ​ ​ ​ 좌측 2020년도 이종하 등산기 - 2013년 퇴직후 ---- 지병인 당뇨병을 등산으로 극복하고 있는 책입니다..

익양공 이천 선생님 (보은군 장안면 오창리)

조선왕조 500년 연속극과, 역사소설 왕비열전, KBS대하드라마 장영실에 익양공 이천 선생님이 등장하고 소개되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천 선생님이 사시던 보은은 상주와 문경, 안동에 가까워 더욱 관심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원래 안동 예안에 선조들이 살았으나 선조 한분이 이곳 충북 보은 장안면 오창으로 이사와 여기를 고향으로 둔 분이다. 같은 시대에 살던 장영실은 서민 출신이지만 이천선생님은 문벌있는 양반 집안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많은 벼슬을 하면서도 세종임금에게 사랑을 받아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아 가셔서 우리나라의 보기드문 인재이다. 가끔 역사적인 위인 전기에 이천선생님이 소개되는 책이있다. 연속극 장영실의 15회차가 몇년전에 방영되며 이천 선생님의 고향이 충북 보은군 장안면 오창리라고 소개되어 당시..

기묘사화(중종14년 1519년), 신사무옥(중종16년 1521년)고찰

◎ 기묘사화(중종14년 1519년), 신사무옥(중종16년 1521년)고찰 조선 임금 중종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중종반정을 통하여 등극하였다.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이 중종 반정으로 왕으로 추대 되었다. 이때 반정이 일어나 겁을 먹고 집에 있는데 집앞에 여러 말들이 궁둥이를 대군의 집으로 향한 것을 보고 반정이 성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말들은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러 온 말이라고 한다. 중종은 정상적인 방법인 세자로 있다가 임금이 된것이 아니라 반정의 주체인 박원종, 유자광, 유순정, 성희안, 홍경주등 공신 세력 덕택에 등극하여 취임초에는 실권이 없었다. 당시 반정 공신의 뜻에 따라야 했다. 따라서 첫 배우자인 단경왕후도 7일만에 역적의 딸과 동생이라고 폐위되고 말았다. 당시 치마바위란 유래..

상주의 인물 구수복 선생님

◎ 상주의 인물 구수복 선생님 * 종의 모함에 쫓겨난 구수복 -謀陷-具壽福 구수복(具壽福:1491[성종22]~1535[중종30])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기묘명현(己卯名賢:1519년 기묘사화로 화를 당한 趙光祖를 비롯한 사림들)의 한 사람이다. 증조부는 집의(執義) 구강(具綱), 조부는 병조참의 구신충(具信忠)이며, 아버지는 생원(生員) 구이(具頤), 어머니는 덕수 이씨(德水李氏)다. 자는 백응(伯凝), 정지(挺之)이고, 호는 병암(屛菴), 수재(睡齋)이다. 본관은 능성(綾城: 전남 화순군 능주면의 옛 지명)이다. 형제가 함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와 충암(冲菴) 김정(金淨)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4남 1녀 중 2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네 살 되던 해 4월과 8월에 잇달아 부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