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역사 등 좋은글 91

독후감-이무영의 농민

문장대 이종하는 폭염에 등산을 중지하고 한국문학전집을 독서하고 있다. 직장시절에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와  책을 주문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월부책 판매원의 어려운 형편도 생각하고 퇴임후 여가선용으로 수많은 전집을 월부로 구입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돕고 퇴직사후에 읽을 거리를 위해 사둔 여러 전집을 현재 읽고 있다. 춘원 이광수 작품부터 현재 70대인 이문열 소설가들의 작품이 엄선되어 만들어진 한국문학전집 중 오늘은 충북 음성이 고향인 이무영 소설가의 농민이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소개합니다.【해설】   이무영(李無影)이 지은 장편소설. 1950년 [한성일보]에 연재, 발표하였고, 1954년에 금융조합연합회 협동문고로 처음 출간되었다. 충청북도 충주 근처 미륵동과 탑골의 지주·토호들의 빈민 착취를 일삼는 농촌의..

최질, 김훈의 난-우리나라 최초 무신의 난

김훈과 최질의 난-고려 8대 현종시 -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1014년) 2018. 3. 14. 7:00 여요(거란과 고려 전쟁) 2차 전쟁 이후 복구 작업에 열중했던 현종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강조의 정변 때문에 현종이 즉위했기에 즉위 초반에는 강조를 비롯한 서경 군벌들에게 눈치를 봐야 했고 요나라와 2차 전쟁 후에는 전공을 세운 장병들에 대한 보상과 포상 문제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 후였기에 복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나라의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한국사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김훈, 최질의 난이 그것입니다. 김훈, 최질의 난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문신, 무신 할 것 없이 신하들의 녹봉 주기에도 빠듯한 1014년이었습니다. ..

국민보도연맹 이란?

* 6.25 전후로 수많은 대한민국 우리 국민이 무참하게 사망한 보도 연맹사건은 재판도 없이 경찰과 군인에게 트럭에 실려 산골짜기나 폐광 등에서 사살당했다. 30만명이라고 추정되는데 어떤 기록에는 5,000명 정도라고도한다. 이후 죽은 사람의 가족은 연좌제에 걸려 많은 불이익을 당하였다. 해방후 우리민족이 3천리 강토에서 만세를 부르면 나라를 찾았지만 남북으로 분단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자기편이 아니라고 살상하고 남쪽을 해방한다고 남침하고 남침의 빌미를 제공한 애치선 라인 등, 좌익운동, 양반과 지주를 없에는 덜콤한 마르크스 주의는 당시로서는 달콤한 이론이었다. 왕과 양반 위주로 살아온 민족으로는 평민과 하층민에게는 달콤하여 양반으로 돈이 많아 배운 사람도 좌익을 선호했다. 그래서 남한에서도 남로당이 조직..

대조영 발해 후예국 정안국(압록강 주변)

대조영이 새운 발해는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망했다. 그러나 발해 유민들이 정안국을 건국했다. 정안국을 잘 모르는 분이 많아 올려봅니다. 그림으로 일단 소개하고 설명 *정안국-압록강 유역에 건국한 발해의 땅-푸른 부분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안국 수도 정치체제 국왕 : 압록강 유역 938년? ~ 976년?976년? ~ 986년? 언어-한국어와 여진어 사용 정안국(定安國, 938년 ~ 986년)은 발해의 귀족 출신인 열만화(烈萬華)가 938년 경 서경 압록부 지역에서 건국한 나라다. 열만화와 오현명, 2대에 걸쳐 48년간 지속되다가 986년 거란에게 멸망되었다. 언어는 중세 한국어 여진어 사용 정안국의 건국 정안국은 938년 경 열만화가 건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거란의..

김훈과 최질의 난-우리나라 최초의 무신의난

김훈과 최질의 난-고려 8대 현종시 -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1014년) 2018. 3. 14. 7:00 여요(거란과 고려 전쟁) 2차 전쟁 이후 복구 작업에 열중했던 현종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강조의 정변 때문에 현종이 즉위했기에 즉위 초반에는 강조를 비롯한 서경 군벌들에게 눈치를 봐야 했고 요나라와 2차 전쟁 후에는 전공을 세운 장병들에 대한 보상과 포상 문제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 후였기에 복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나라의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한국사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김훈, 최질의 난이 그것입니다. 김훈, 최질의 난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문신, 무신 할 것 없이 신하들의 녹봉 주기에도 빠듯한 1014년이었습니다. ..

상주의 인물 -초대사회부장관 전진한

초대 사회부장관 전진한 분류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노동운동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제3대 부통령 선거/후보 제헌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 제3대 국회의원 제5대 민의원의원 제6대 국회의원 민정당 국회의원 신민당(1967년) 국회의원 한국독립당(1963년) 국회의원 민중당(1965년) 국회의원 제6대 대통령 선거/후보 상주시 출신 인물 문경 전씨 1901년 출생 1972년 사망 와세다대학 출신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국민훈장 무궁화장 중동고등학교 출신 사회부 장관 이승만 정부/인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물 희귀성씨인 인물 대한민국 초대 사회부 장관 전진한 錢鎭漢 | Jeon Jin-han 출생 1901년 11월 5일 경상북도 함창군 현내면 오사리[6] (現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사리 214번지)[7]..

고령가야 고찰(상주시 함창읍)

김수로왕이 허황후와 건국한 가야국은 김해에 본거지를 두고 경상 남북도와 전라도 일부가 가야 땅이었고 그 세가 확장되면서 여러가야로 변하였고 마지막엔 경북 고령군에 대가야갸 유지되다가 신라에 합병되었다. 상주 함창에 존재하는 고령가야는 상주시 함창과 사벌국면 일대에 번성하여 3대의 왕이 상주 함창에서 고령가야로 칭하여 존속하다가 신라에 병합되었다, 상주의 고령고야와 고령군의 고령가야는 엄연히 다르다. 가야연맹을 구성하는 여섯 가야 가운데 하나로 낙동강 상류지역인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문경 지역에 위치했다고 전해진다.《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가야연맹(伽倻聯盟)을 구성하는 육가야(六伽倻)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나라이다. 뚜렷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으며, 자세한 기..

병자호란 전후 시대상

인조 : 조선의 제16대 임금. 본명은 이종(李倧). 조선왕조의 네 번째 반정[7]인 인조반정으로 백부 광해군과 지지세력인 북인 일파를 대거 축출하여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는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의 5남인 원종(정원군)이며, 어머니는 인헌왕후 구씨다.[8] 정원군의 장남으로, 능양군[9]으로 책봉되었다. 반정을 통한 인조의 집권은 실질적인 조선 제2 왕조의 창건 및 조선 왕조의 중시조로 평가된다.[10] 조선후기 300년 간 진행된 제도개혁의 논의는 인조 시대에 모두 시작되었으며, 왕통상으로도 인조 이후 즉위한 조선의 임금은 마지막 군주인 순종까지 모두 인조의 직계후손들이다. 혈통상으로 순종의 아버지 고종은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직계 8대손이다.[11] 전술하듯 광해군은 물론 그 아들인 세자까지 장성..

상주의 인물 위암 장지연

張志淵(장지연) 1864년(고종 1) 11월 30일 ~ 1921년 10월 2일 상주시 인봉동 성동동 근처 에서 태어남 대한제국 때의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 본관은 인동(仁同)[1], 자는 화명(和明)·순소(舜韶 또는 舜紹),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嵩陽山人). 본명은 장지윤(張志尹).1905년 [2]의 주필로서 을사조약을 규탄하는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기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한말에 애국 · 계몽 운동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으나 경술국치 이후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 에 기고한 논설 730여 편이 문제가 되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말년에 시베리아에서 의병 활동을 지휘했다는 일본 외무성의 문서가 2009년에 공개되었다. 위암 장지연(1864∼1921)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

서애 류성룡의 후손 좌의정 류후조, 변호사 류영하

징역 22년의 유죄를 확정받고 수감 중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이 2021년 12월 31일 자정(0시)을 기해 단행됐다.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4년 9개월 만이다. 이 긴 수감 기간 중 정성을 다해 보필한 류영하(柳榮河) 변호사는 선대의 고향이 의성군 단밀면 생물리이다. 이곳은 한때 상주목 속현(屬縣)으로 서애 류성룡이 상주 목사로 재임할 때 점지해 두었던 땅이다.입향조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를 지낸 류단 (1580~1612)은 임란 극복에 앞장섰던 『징비록』의 저자 명재상 류성룡(柳成龍) 둘째 아들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사헌부 지평을 지낸 아우 류진(1582~1635)의 둘째 아들 백지(百之)를 양자로 삼으니 비록 단과 진 두 집안의 가계는 달라도 사실상 같은 핏줄이라고 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