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역사 등 좋은글 94

지강서원( 사벌국면 묵상리)

사벌국면 묵상리 각근사 아래 위치한 지강서원 지도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묵상리-먹실마을에 있었던 서원. 1745년(영조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국성(鄭國成)·조희인(曺希仁)·조우신(趙又新)·조정융(曺挺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5년에 설단(設壇)하여 매년 7월에 단향(壇享)을 실시하고 있으나 서원을 복원하지는 못하였다. 재산으로는 밭 1,500평, 대지 300평 등이 있다. 묵계계곡에 돌담만 남아 있는데 복원이 필요하다. 저기 보이는 4개의 위패석은 정국성, 조희인, 조우신, 조정융 4분의 비석이다. 조희인은 조우인의 아우입니다. 신잠선생님이 새운 상주의 ..

조선시대 관리 최경창과 기생 홍랑 사랑이야기

♧ 조선 함경도 기생 홍랑의 사랑 이야기 ♧ ​ 조선 선조 때 함경도 기생 홍랑(洪娘 ? ~ ?)과 함경도 경성에 북해평사로 부임한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1539~1583) 과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 홍랑은 어릴 때부터 미모와 문재(文才)가 뛰어났고, 시·서·화를 겸비한 함경도 경성의 시인이자 기생이었다. ​ '고독한 대나무' 고죽 최경창은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송강 정철과 교유하며 '조선 8 문장' 중의 한 사람으로 통했다. ​ 과거에 합격한 최경창은 1573년에 함경북도 경성 지방의 북도평사(北道評事)로 부임한다. 부임 축하 연회에서 당시 최고의 문장가 최경창과 홍랑의 ? 대면이 이루어진다. 이때 홍랑은 16세, 최경창은 34세였다. ​ 이 자리에서 홍..

고약회 선생님과 고약해 선생님(조선시대 관리)고찰

* 조선시대 수군 절도사 고약회 선생님 - 절도사 개성고공(약회) 묘표 공의 휘는 若淮요 성은 高씨이니 관이 開城으로 고려 이부상서 良敬公 諱 令臣의 후이다. 증조 휘는 大明이니 합문지후요, 조의 휘는 瑛이니 판도판서요, 고 휘는 士原이니 본조 직제학이다. 妣는 遂安郡夫人 金氏이니 찰방 履의 딸이다. 공을 낳아 봉제사를 이었다. 관이 수군절도사에 오르고, 세조조의 원종공신이다. 묘는 용주현의 동남 회룡산의 경좌원에 있다. 배 숙부인 거제 潘씨는 부위 潤의 딸이니 묘가 考位墓 위에 있다. 3남 3녀를 두었는데, 남의 맏은 壽延이니 部長이요, 다음은 壽仁이니 府使요, 다음은 壽堅이요, 딸은 張綱, 安石亨, 金慶昌이다. 壽延이 5남 3녀를 두었는데, 남의 맏은 克勤이니 경력이요, 다음은 克儉이니 부위요, 다음..

경상 관찰사 조엄과 동래관찰사 지석영-조선시대

상주 목사는 고려 문종이래 조선시대 말까지 1,000명 정도 상주에 부임했다. 기록상 첫 목사가 이재원이고 마지막 목사는 이호준이다. 이후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해방후 현재까지 많은 목사급의 군수와 시장이 발령받아 부임했다. 이 중에 일본 사신으로 다녀오다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가져온 조엄이 경상괸찰사로 근무한 사실과 종두법을 발견한 지석영 선생님이 역시 동래부사, 동래관찰사로 부임한 사실이 오늘날 새롭게 여겨진다. 조선시대 유명한 사람은 거의 경상관찰사로 부임한 사실이 확인된다. 즉 관찰사를 거쳐야 더 높은 직위를 얻고 출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늘은 조엄선생님과 지석영 선생님에 대하여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 조엄 선생님에 대한 고찰 출생 - 사망 :1719년(숙종 45) ~ 1777년(정조 ..

울산오씨의 연원과 상주 봉강리 학성사

상주시내-세천-봉강1리-봉강2리 별표 지점이 학성사인데 도로 바로 옆 종친회장 오병욱 님이 작성한 울산오씨의 연원과 정간 오식 선생님의 여러 자료를 올립니다. 1, 서 문(序文) 2, 정간(靖簡) 식( 湜)공의 관향(貫鄕) 가 ,울산오씨(蔚山吳氏)의 연원(淵源) 나, 관향(貫鄕)의 연혁(沿革) 3 ,정간(靖簡) 식( 湜)공의 상계(上系) 4 정간(靖簡) 식(湜)공의 일대기(一代記) 5 정간(靖簡) 식(湜)공의치적(治績) 가, 제도개선(制度 改善) 1)세제(稅制)의 설정(設定) 2) 합리적(合理的)인 행정구역(行政區域) 개편(改編) 나, 왜적침략(倭賊侵略)의 격퇴(擊退) 다, 외교활동(外交活動) 라, 귀감(龜鑑)의 청백리(淸白吏) 6, 정간(靖簡) 식(湜)공의 추모행사(追慕行事) 7, 실정(失政)에 의한 ..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박에스터)2

조선말에 태어난 김점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를 앞서 소개 하였다. 여기 그분의 생애와 사진을 추가 소개합니다. * 본명 - 김점동, 결혼후 미국에서 살면서 박에스터로 이름이 변경. 미국에서 여성은 성이 남편 성으로 바뀜. 남편의 이름이 박유산 이므로 박에스터로 바뀜. * 결혼사항 - 구한말 1893년 5월 2022년 2월 현재로 약129년전 박유산과 결혼. 당시 신랑 박유산 26세, 신부 김점동은 17세로 9세 차이, 박유산은 감리교 선교사의 월리엄 홀의 마부 출신.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보시는 분은 잘 보관하세요. 120년 전 사진입니다. *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의 삶의 소개 구한말 1877년 서울에서 김홍택의 셋째딸 김점동은 어려서 부터 영특하여 고종황제가 새운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당시 감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 김점동

1887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이화학당의 당장실로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곳엔 아이가 생전 처음 보는 파란색 눈의 서양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아이를 반갑게 맞으며 난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잡아당겼다. 그 순간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부인이 자신을 난로 속에 잡아넣어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 부인의 친절한 미소를 보며 아이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서양인 부인은 바로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었으며, 여자 아이는 이화학당 부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점동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개설된 시기는 1885년 8월이다. 그러나 첫 학생이 들어온 것은 그 이듬해인 1886년 5월이었다. ..

문랑과 효랑 이야기(김천시 감천면 도평리)

조선 시대 2효녀 문랑과 효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청현사 근방의 이효각 감천면 도평2리 263-1에 위치 금오지맥을 답사하기 위하여 김천과 성주를 가다 보면 감천초등지나 도평2리 263-1의 위치에 청현사가 있고 근방에 이효각의 비석이 있다. 이곳은 숨막히고 처절한 사연이 전개되는 역사의 현장이다. 요새 같으면 나라가 떠들썩 할만한 큰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난 사실이다. - 사건 개요 경상북도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녀 문랑·효랑 자매의 이효각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문랑·효랑 자매는 죽산 사람 박수하의 딸로 1709년(숙종 35)에 현풍 권력가인 청하 현감 박경여에게 선산을 빼앗겼다. 부호이자 권세가인 박경여가 박씨 선산에 자기 할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 하였다. 이장을 중지할 것을 요..

장녀의 수필집 발간

교직에 있는 장녀가 어려운 직장생활 틈틈히 쓴 수필을 모아 수필집을 발간했습니다. 요새 학교생활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준이 크게 신장하여 학생교육이 매우 힘들과 까다로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잘 극복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희로애락을 글로 잘 표현하여 생활의 미에 이바지하는 글이다. 앞으로도 투철한 교육철학을 실현하며 더욱 많은 수필집을 발간하고 장녀의 생활에 더욱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선 제목과 차례만 올립니다. 내용이 입수되면 추가로 올리겠습니다. 큰딸의 직장생활과 가정생활 나날이 재미있고 보람찬 나날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건강, 행복, 행운이 모두 잘되기를 기원합니다. 표지설명- 안동시 길안면의 만휴정(晩休亭)은 글자 그대로 느지막이 쉬는 정자다. 무오사화로 친구 김종직과 제자들을 잃은 후 청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