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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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바위봉-쌀개바위봉-대전리 약수터

* 가마바위봉-쌀개바위봉-대전리 약수터를 2024년 1월 31 답사 * 이동지역 : 외서면 삼령로 새약수식당위-돌탑대문 앞 주차출발-도랑건너-비닐집-묘지-능선 진입-능선 지루하게 이동-위험바위지대 아슬아슬 통과-가마바위봉- 능선이동-쌀개바위봉 왕복-약수터 뒷산도착-철사로 등하산 표시-곳곳 입산금지표지판-바위약수터 도착-개천따라 돌탑문집 도착-차회수 귀가. 상주에서 우산터널 거쳐 독점 농장 지나면 새약수 식당 등장하고 조금 가면 돌탑으로 별장을 지은 곳에 주차하고 츨발 도착한 주변 앞산 이동그림이며 붉은선 따라 검은 화살표 대로 이동함-그제 다녀온 쌀개바위봉을 다녀오고 명품바위봉이 있는 바위 약수터로 철사를 따라 하산함. * 등산 내용 : 상주시 외서면 대전리 삼령로를 따라 차를 타고 가다보면 독점농장부터..

명산탐방 2024.01.31

대조영 발해 후예국 정안국(압록강 주변)

대조영이 새운 발해는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거란의 침입을 받아 망했다. 그러나 발해 유민들이 정안국을 건국했다. 정안국을 잘 모르는 분이 많아 올려봅니다. 그림으로 일단 소개하고 설명 *정안국-압록강 유역에 건국한 발해의 땅-푸른 부분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안국 수도 정치체제 국왕 : 압록강 유역 938년? ~ 976년?976년? ~ 986년? 언어-한국어와 여진어 사용 정안국(定安國, 938년 ~ 986년)은 발해의 귀족 출신인 열만화(烈萬華)가 938년 경 서경 압록부 지역에서 건국한 나라다. 열만화와 오현명, 2대에 걸쳐 48년간 지속되다가 986년 거란에게 멸망되었다. 언어는 중세 한국어 여진어 사용 정안국의 건국 정안국은 938년 경 열만화가 건국한 것으로 보고 있다.거란의..

구마이마을-쌀개바위봉(상주시)

* 이동지역 : 상주시 내서면 구마이 곶감 정보화 마을-구마이마을 정자와 느티나무-서만1교-종수네곶감 좌측 계곡-파라골임도 여골1차선-서만2길진입-중간 진양골 진입-우측 도골과 벼락박골 좌측 골짜기 건넘-청주한씨 문중묘 오름-묘지 끝나고 눈사람 바위-능선양쪽 소나무식수(산불이 몇년전 난곳)-바위와 낙엽길로 쌀개바위 도착-뒤돌아 오려다가 가마바위 위쪽으로 전진-산불로 인해 죽은 나무와 잡목가시가 빽빽-전진난관-쌀개바위봉 500m정도 오르니 가마바위는 또 다른 능선을 타야함-가마바위봉은 독점 농장에서 오르는 능선으로 가야함-가마바위는 너점고개서 답사한바있어 질기넘어골 능선으로 하산-왼쪽 묘지길 좋은곳 있는데 후회막심-전씨묘지-큰 벼락골하산 - 동갑내기 나무꾼 윤영주 주민과 10분간 담소-상주시내서 만나기로함..

명산탐방 2024.01.29

김훈과 최질의 난-우리나라 최초의 무신의난

김훈과 최질의 난-고려 8대 현종시 -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1014년) 2018. 3. 14. 7:00 여요(거란과 고려 전쟁) 2차 전쟁 이후 복구 작업에 열중했던 현종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강조의 정변 때문에 현종이 즉위했기에 즉위 초반에는 강조를 비롯한 서경 군벌들에게 눈치를 봐야 했고 요나라와 2차 전쟁 후에는 전공을 세운 장병들에 대한 보상과 포상 문제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 후였기에 복구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나라의 재정이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한국사 최초 발생한 무신의 난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김훈, 최질의 난이 그것입니다. 김훈, 최질의 난 재정이 바닥난 상황에서 문신, 무신 할 것 없이 신하들의 녹봉 주기에도 빠듯한 1014년이었습니다. ..

밤원체험마을 뒷산-상주시 내서면

* 등산일자와 등산인 : 2024년 1월27일(토요일) 문장대 이종하와 중학교 친구 정재익 2명. * 이동지역 : 서원보건지소-서원교-밤원체험마을주차장 출발-임도-밤원상곡뒷산치고오름-400m봉도착-능선이동-임도합류-희골, 예의리 여물마을 임도길 갈림길 중간-서원마을 하산-정화조 공장 도착-서원마을-밤원체험마을-주차장 도착. 상주시 내서면 서원마을 밤원체험마을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오르다가 능선으로 올라 400m봉까지 치고 올라 임도빙향으로 오름 오르다가 사냥개와 사냥꾼을 만남-위 붉은선과 노랑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여 절반은 산 능선을 이동하고 절반은 희골 바람소리길로 이동하여 원점 회귀한 지도. * 등산내용 : 이번주는 혹한으로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어 등산은 커녕 북천 방천 운동도 못하고 집안에서 애꿎은..

명산탐방 2024.01.27

상주의 인물 -초대사회부장관 전진한

초대 사회부장관 전진한 분류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노동운동가 한국의 독립운동가 제3대 부통령 선거/후보 제헌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 제3대 국회의원 제5대 민의원의원 제6대 국회의원 민정당 국회의원 신민당(1967년) 국회의원 한국독립당(1963년) 국회의원 민중당(1965년) 국회의원 제6대 대통령 선거/후보 상주시 출신 인물 문경 전씨 1901년 출생 1972년 사망 와세다대학 출신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국민훈장 무궁화장 중동고등학교 출신 사회부 장관 이승만 정부/인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 인물 희귀성씨인 인물 대한민국 초대 사회부 장관 전진한 錢鎭漢 | Jeon Jin-han 출생 1901년 11월 5일 경상북도 함창군 현내면 오사리[6] (現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사리 214번지)[7]..

고령가야 고찰(상주시 함창읍)

김수로왕이 허황후와 건국한 가야국은 김해에 본거지를 두고 경상 남북도와 전라도 일부가 가야 땅이었고 그 세가 확장되면서 여러가야로 변하였고 마지막엔 경북 고령군에 대가야갸 유지되다가 신라에 합병되었다. 상주 함창에 존재하는 고령가야는 상주시 함창과 사벌국면 일대에 번성하여 3대의 왕이 상주 함창에서 고령가야로 칭하여 존속하다가 신라에 병합되었다, 상주의 고령고야와 고령군의 고령가야는 엄연히 다르다. 가야연맹을 구성하는 여섯 가야 가운데 하나로 낙동강 상류지역인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 문경 지역에 위치했다고 전해진다.《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가야연맹(伽倻聯盟)을 구성하는 육가야(六伽倻)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나라이다. 뚜렷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으며, 자세한 기..

병자호란 전후 시대상

인조 : 조선의 제16대 임금. 본명은 이종(李倧). 조선왕조의 네 번째 반정[7]인 인조반정으로 백부 광해군과 지지세력인 북인 일파를 대거 축출하여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는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의 5남인 원종(정원군)이며, 어머니는 인헌왕후 구씨다.[8] 정원군의 장남으로, 능양군[9]으로 책봉되었다. 반정을 통한 인조의 집권은 실질적인 조선 제2 왕조의 창건 및 조선 왕조의 중시조로 평가된다.[10] 조선후기 300년 간 진행된 제도개혁의 논의는 인조 시대에 모두 시작되었으며, 왕통상으로도 인조 이후 즉위한 조선의 임금은 마지막 군주인 순종까지 모두 인조의 직계후손들이다. 혈통상으로 순종의 아버지 고종은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직계 8대손이다.[11] 전술하듯 광해군은 물론 그 아들인 세자까지 장성..

인천채씨 -우담 채득기의 무우정(舞雩亭)1636, 상주 경천대

* 인천채씨 -우담 채득기의 무우정(舞雩亭)1636, 상주 경천대 경천대(무우정) 사벌국면 삼덕리 1-13(경천로 652) 1636년 무우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무우 채득기(蔡得沂, 1604~1647)공의 정자이다. 조선 인조 때 1628년부터 은거하면서 충절과 북벌 의지를 다지며 공부하던 곳이다. 그는 여기서 학문을 연구하는 한편 가뭄이 심할 때에는 악공과 무희를 동원하여 음악과 춤을 추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무우정은 막돌로 기단을 쌓고 자연석 주초 위에 전면은 둥근 기둥이고, 후면은 사각 기둥이다. 합각지붕의 홑처마로 보수 당시는 가운데 칸과 전면 반 칸은 우물마루이고, 남(안)쪽은 방이었으나, 나중에 방은 헐어버렸다. 1748년 상주목사 이협이 중건하였고, 1948년 이를 보수하였으며 200..

상주의 인물 2024.01.25

상주의 인물 위암 장지연

張志淵(장지연) 1864년(고종 1) 11월 30일 ~ 1921년 10월 2일 상주시 인봉동 성동동 근처 에서 태어남 대한제국 때의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 본관은 인동(仁同)[1], 자는 화명(和明)·순소(舜韶 또는 舜紹),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嵩陽山人). 본명은 장지윤(張志尹).1905년 [2]의 주필로서 을사조약을 규탄하는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기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한말에 애국 · 계몽 운동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으나 경술국치 이후 1914년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 에 기고한 논설 730여 편이 문제가 되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말년에 시베리아에서 의병 활동을 지휘했다는 일본 외무성의 문서가 2009년에 공개되었다. 위암 장지연(1864∼1921)은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