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명산탐방

피반령

문장대 2018. 10. 19. 21:14

 

* 여행지 : 피반령 괴목공원-피반령-오장환 문학관(보은 회인)

* 여행인 : 문장대 부부

* 여행일 : 2018년 10월 19일(금)


* 청주에 거주하는 큰 아들이 신형사업인 슬라임 스쿨을 용암동에서 개업하여 축하 겸 궁금하여 다녀오는 길에 피반령을 답사하고 주변에 괴목공원과 회인 초등 근방에 소재하는 오장환 문학관을 구경했다. 이곳 피반령은 옛날부터 충청도 청주에서 보은거처 경상도로 향하는 험한 고개였다. 그리고 며칠전 만산동호회 등산인들이 이곳을 다녀 가서셔 그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답사했다. 그동안 청주 왕래하는길은 피반령 터널만을 통과하는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주로 지나다가 20년전 무심코 지났던 이곳의 피반령을 생각해보며, 오늘 일부러 답사하였습니다.


* 피반령의 유래 : 조선조 중기 선비이자 정치가인 이원익 대감이 경주로 부임하기위해 이곳을 넘을때 너무 힘들어 말을 타지 않고 걸어가게 되자 가마군들을 기어가게 해서 발에 피가 나도록 고생시켜 피발령이라는 설과, 이곳에 피밭이 많아 피밭이 피발령으로 되었다는 설,  그리고 경주 호장이 이곳에 이원익 대감을 맞이하로 왔는데 교군들이 힘드니 걸어거자고해서 같이걷다가 대감이 기분이 나빠 경주 호장도 기어 가라고 해서 기어 오르다가 발에 피가 나도록 고생해서 피반령이라는 3설이 있다. 360미터의 높이지만 당시에는 꽤 높은 고개였든 모양이다. 보은에는 수리티고개-말티고개도 있어 당시는 보은이 다니기 험했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다.



                피반령 못가서 중턱에 위치한 괴목공원- 피반령 오르는 길옆 나무뿌리 공예전시장



                TV에 여러번 소개된 70대 남자분이 이곳에 거주하며 괴목을 전시하고 있다. 괴목 관람을 하고 미안해서  칠즙을 구입하여  현지에서 조금 마시고 집에 가져옴.



  이곳에 많은 분들이 쉬고 있다. 포장마차에서는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오트바이 타시는 분들,라이딩 하시는분들, 차를 타고 고개넘어 다니며 여행하는 분들 등 이 쉬고있다.


   피반령 정상 쉼터



  갑토봉


 남서쪽 등산로를 따라 바로옆의 봉우리를 다녀옴


                     피반령  바로옆 봉우리 탐방하니 누군가 국화 조화를 심어 놓았습니다.


* 다음 사진은 회인 면사무소 소재지 회인 초등학교 옆의 오장환 문학관 사진입니다.





 

 

 

 

 

 

 

 

 

 

 

 

 

 

 

 

 

 

 

 

 

 

 

 

 

 

 

 

나는 문학이다

오장환

시단의 천재 비운에 지다

[]

출생 - 사망 1918년 5월 5일 ~ 1948년 추정(신장염으로 사망)
출생지 충청북도 보은 회인 출생- 어머니를 무척 그리워함

서정주와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가담했던 오장환(, 1918~1948 추정)은 1937년에 시집 『성벽』을 출간한다. 그의 시는 《시인부락》의 순수서정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시인부락》이 비판하였던 모더니즘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는 양편 모두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한국시의 순수서정성과 모더니즘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그런 만큼 그는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1933년부터 1948년 월북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삶과 문학에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절망과 비애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시인이 살았던 시대의 비극 외에 시인 개인의 출신배경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오장환은 1918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서자로 태어난다. 물론 서자라는 게 당시에는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보편적 모순이었다. 하지만 유난히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오장환은 늘 뒷전에 있어야 하는 소외감을 견디지 못하고 반항적이고 우울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이것은 학창시절은 물론 나중에 문학에 뛰어들어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굴절되어 나타난다. 중동고등학교 속성과를 수료하고 휘문고보에 입학한 오장환은 학비를 내지 못해 중퇴한 상태에서 1933년 《조선문학》 11월호에 「목욕간」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고, 곧 도일하여 명치대학 전문부를 다니다 귀국하고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한다.

아직 고보를 졸업하지도 않은 16세 무렵에 “내가 수업료를 바치지 못하고 정학을 받아 귀향하였을 때 달포가 넘도록 청결을 하지 못한 내 몸을 씻어보려고 목욕탕엘 갔었지”로 시작되는 이 「목욕간」이라는 시는 아저씨와 함께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일본인이 경영하는 목욕간에 목욕하러 가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당하는, 일정한 스토리를 지닌 시이다. 이를 비롯하여 오장환은 초기에 길게 늘어뜨리는 산문 투의 형식 등 여러 모더니즘 형태를 실험하는데 이것은 장시 「전쟁」
1)이상)과 관습, 역사까지도 부정하고픈 욕망으로 이어진다.

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어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 온 일청인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지는 진실 오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아도 좋다. 해변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서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라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 오장환, 「성씨보()」, <조선일보>(1934)

1934년 오장환은 김기림의 주선으로 <조선일보>와 《낭만》 등에 「성씨보」를 비롯하여 「역()」, 「향수」, 「면사무소」, 「수부()」 등을 발표하고 1936년 《낭만》,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며 「우기()」, 「성벽」, 「온천지」 등을 발표하고서 그동안 여기저기에 발표한 시들을 묶어 이해 1937년 <풍림사>에서 첫 시집 『성벽』을 간행한다. 시집 『성벽』은 「전쟁」에서 보이던 실험성은 누그러든 대신 ‘성벽’이라는 제목으로 상징되는 봉건적 억압에 대한 반항정신과, 문명을 빙자하여 타락해가는 부르주아적 근성 모두를 비판한다.

『성벽』 발행 이후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3천재’2)라거나 ‘시의 황제’3)

시는 새 타입의 서정시를 세웠다. 거기 담겨 있는 감정은 틀림없이 현대의 지식인 그것이다. 현실에 대한 극단의 불신임, 행동에 대한 열렬한 지향 그러면서도 이지와 본능의 모순 때문에 지리멸렬해 가는 심리의 변이, 악과 퇴폐에 대한 깊은 통찰, 혼란 속에서도 어떠한 질서를 추구해 마지않는 비극적인 노력, 무릇 그러한 연옥()을 통과하는 현대의 지식인의 특이한 감정에 표현을 두었다.
김기림

그러나 곧 ‘성벽’ 뒤에 있는 허무와 퇴폐를 감지한 오장환은 새로운 문물을 가득 실은 이국선들이 드나드는 낯선 항구의 ‘여정()’에 오르게 되고 그 낯선 거리에서 이리저리 방황한다. 오장환이 찾아간 항구는 ‘술과 계집을 찾어다니는 시꺼믄 얼굴, 윤락된 보헤미안의 절망’과 ‘젖가슴이 이미 싸늘한 매음녀’가 ‘파충류처럼 포복’하는 술과 싸움과 도박에 찌든 탕자들이 우글대는 장소였다. 그들 속에 끼어 동화되려고 애쓰지만 결국 오장환은 이곳에서도 고독과 소외감만을 안고 나와 급기야는 죽음으로 도피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은 1937년과 1939년에 걸쳐 발표한 「황무지」, 「선부()의 노래」, 「적야()」, 「상열()」, 「The Last Train」, 「소야()의 노래」, 「헌사(, Artemis)」, 「나포리의 부랑자」, 「무인도」 등에 묘사되며, 이들과 미발표작들을 엮은 것이 1939년에 간행된 시집 『헌사』이다.

도시문명과 탕자들이 우글거리는 부두와 죽음의 늪 주위를 방황하던 긴 여정 끝에 오장환은 문득 고향을 떠올린다. 지치고 피곤한 몸은 그가 그토록 부정해왔던, 그러나 결코 부정될 수 없는 뿌리에서 안식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해방 직전 오장환의 이러한 심적 상태를 표현하여 모아두었다 해방 후에 엮은 것이 1947년 간행된 시집 『나 사는 곳』이다.

오장환은 모처럼 찾은 안식처에서 얼마 쉬지 못하고 곧 이 시기의 다른 문인들처럼 또 하나의 세계관을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다. 그는 1946년
임화, 김남천

오장환은 우연히 길에서 《시인부락》 시절 가까웠던 서정주4)

[네이버 지식백과]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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