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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문장대 2018. 1. 26. 17:39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선사  작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욕심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경북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서 태어난 나옹은 조선 건국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을 제자로 둘 정도로 당대 최고의 스님이었는데 아주 어려운 환경의 집안에서 출생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경북 영덕의 창수면이 고향이라 알려져 있으며 출가 전 속성(姓)이 아씨(牙氏)이고 이름은 원혜라고 하는데  귀한 성씨 같습니다. 상당히 총명하였던 어린 시절 느닷없는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출가를 했다고 하는데 일단 문경 산북의 사불산 대승사 옆  묘적암이란 곳으로 가서 머리를 밀고 정식으로 출가를 하여 전국의 명산 고찰을 떠 돌아 나니게 됩니다.

4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 다니다가 자리를 잡은 곳이 지금 경기도 양주(楊州)의 회암사(檜巖寺).. 이곳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4년 뒤 28세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지금의 북경인 원나라 수도인 대도(大都), 그곳에서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을 하고 10년 뒤 다시 고려로 돌아 옵니다. 돌아 오기 전에 이미 중국에서도 나옹은 상당히 유명해져서 원나라 황실에서도 알아주는 고려 고승의 경지에 다다른듯 합니다.

그 뒤 국내에서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불사를 설법하고 교화하다가 공민왕의 왕사가 되어 순천의 송광사에 머물다 스승 지공의 지시사항이었던 '삼산양수지간기(三山兩水之間記)' - 삼산(三山)과 양수(兩水)가 합친 중간 지점에 마치 인도(印度)의 아란원사(阿蘭院寺)와 꼭같은 터가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지으라는 내용 을 지키기 위하여 자리를 찾던 중 이전에 지냈던 절 회암사가 그곳이라 여겨져 회암사 중창불사를 거창하게 하게 됩니다. 사실 회암사는 이전에 지공이 고려에 잠시 들어와 최초 창건한 절이기에 이 절은 스승 지공과 제자 나옹, 그리고 그 뒤 다시 나옹의 제자였던 무학이 주지로 있었으니 그 절집의 위세가 짐작할만 하다고 여겨집니다. 고려시대 불교 총 본산이 이곳 회암사였다 하니 그 시절 절의 위세는 대단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가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 절의 폼세는 없고 매우 초라한 절로 남아 있다 하네요. 

   회암사에서 나옹이 불사를 하면 인근의 부녀자들이 불법을 듣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 들었는데 이를 핑계로 생업에 지장이 왔다며 나옹을 음해하는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나옹은 졸지에 회암사를 떠나 밀양 영원사로 가라는 어명을 받습니다. 이미 병이 있던 나옹은 이때 스스로의 병세를 알고 육로로 향하던 길을 한강에서 배로 꺼꾸로 올라 여주 신륵사에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나옹은 법상에 좌정한 채 영원한 선정에 들었가게 됩니다. 그의 세속 나이 57세. 봉미산에 오색구름이 돌고 나옹의 말(馬)이 사흘을 먹지고 않고 울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신륵사에서 지낸 나옹은 그곳에서 가까운 여강(驪江)에서 다비를 하였는데 사리가 155과가 나왔다하며 제자들이 계속해서 염불하니 사리는 558과로 나누여 졌다고 합니다.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고려 말의 어지러운 대중세계를 불밝히고 생불로 추앙받던 고승 나옹은 이렇게 떠났고 그곳 신륵사에는 이 나옹과 관련된 숱한 전설과 이야기만 남겨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신륵사는 임진란때 모조리 불타 사라진 절을 현종과 철종때 재건 중수 한 것입니다. 신라때 절인 신륵사에서 오래된 것으로 남겨진 것은 벽돌로 만든 다층전탑과 나옹의 부도비, 그리고 돌로 된 석종비, 석종 앞 석등과 대장각기비가 전부입니다. 여강 앞에서 나옹을 다비한 자리에는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고 나옹의 호를 딴 강월헌(江月軒)이란 정자가 무심한 세월 속에 강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나옹선사도 그렇고 추사(秋史)나 다산(茶山)과 친하였던 초의선사(草衣禪師) 등도 모두 선사(禪師)라는 호칭을 붙이는데 이것의 명확한 구분이 뭔가 알아보니 다음과 같네요. 참고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祖師(조사): 석가모니부처님의 정통 법맥(선맥)을 이어 받은 덕이 높은 스님.
禪師(선사): 오랫동안 선을 수행하여 선의 이치에 통달한 스님.
宗師(종사): 한 종파를 일으켜 세운 학식이 깊은 스님.
律師(율사): 계율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스님. 또는 계율를 전문적으로 연구했거나계행이 철저한 스님
法師(법사): 경전에 통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선양하는 스님.
和尙(화상): 평생 가르침을 받는 은사스님.
師門(사문): 인도말로 쉬라마나 즉, 출가수행자.
大德(대덕): 덕이 높은 큰 스님.
大師(대사): 고승대덕 큰 스님.
國師(국사) 또는 왕사(王師): 한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의 명칭으로 황제나 국왕이 명한 직책.

출처: http://duga.tistory.com/371 [지구별에서 추억 만들기]


   나옹선사 (1262-1342);고려 말기의 고승,공민왕의 왕사. 조선건국시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한 나옹선사는  문경 산북 사불산  대승사 옆 묘적암에서 잠시 살았고, 상주에도 거주하며 명산인 갑장산에 들어와서 갑장사를 창건하였다. 갑장산 등산하다보면  정상 옆 백길 바위, 나옹바위가 실제 있는데 나옹바위에서 도를 닦았다는 유래가 있다. 경북 영덕군 창수면 운서산(526미터)에 기슭에서 태어 났으며 장육사는 그가 처음지은 절로 유명하다. 나옹이 죽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장육사에서 살다가 열반하였으며 현재도 많은 신도와 참배객이 찾아온다. 그의 시는 많지만 대표적인 것은 청산은 말없이 --- 라는 시로 삼진 스님이 곡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우리역사상 많은 고승이 있지만 나옹선사가 제1일 유명한 고승이라 말하고 싶다.



갑장산 옆 100미터 거리에 나옹바위 --뽀족한 바위가 나옹바위며 저기서 하루종일 도를 닦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