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명산탐방

갑장산(상주 제1명산, 806m)

문장대 2024. 7. 22. 19:42

문장대 이종하는 2024년 7월 22일 갑장산을 등산했다.  이열치열 정신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상주제1의 명산을  혼자답사했다. 여럿이 가면  좋지만 내체력에 맞게 쉬엄쉬엄 쉬면서 하루종일을 소요했는데 무더운 여름 날씨지만 갑장산의 산바람은 너무 시원했다. 갑장산은 용흥사 갑장사, 백길바위 나옹바위 석문, 시루봉 등이 유명하다.  물이 부족하여 갑장사 뒷편에 있는 용지샘을 찾아가서 물해결은 쉽게했다. 물맛은 그만이다. 갑장사가 용지샘 때문에 원래 샘 근처에 있었다가 현재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정상 조금 아래는 유명한 시를 만들고 근래 트로트  노래 곡조로 유명한 나옹 선사의 바위가 있는데 백길바위 옆 나옹 바위가 유명하다. 나옹선사가 지은 시를 소개합니다.

 

<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간, 나옹선사 >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3ㆍ4ㆍ3ㆍ4의 음절이 멋진 이 시는 우리 한민족의 몸속에 흐르는 아리랑 가락이 흘러가는 듯 하다. 식당, 찻집 등 벽면에 나무에 새겨있기도 하고 액자로, 멋진 붓글씨로 우리를 반긴다. 이 시를 남기신 분은 고려 후기 공민왕의 스승이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懶翁, 1320~1376)선사 이다.

나옹선사가 갑장사를 창건 했다는 설이 있는데 갑장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300m가면 나옹바위가 실제 존재한다. 나옹바위에서 나옹선사가 수도했던곳이다

 

 

갑장산 등산과 하산시 임도로 내려와 도로옆의  9구곡 소개

                                              용흥사 입구 연악식당앞 대주차장 주차하고 출발-오전 11시경 출발

 

                                           연악식당안으로 진입후 다시 식당좌측으로 오름

 

                                               식당좌측에 수많은 리본이 등산로를 알림

 

                                          급경사를 이리저리 올라 첫쉼터 도착

                                              이제부터는 능선으로 이정표 따라 오름

                                          상산 도착

                                                 갑장산 제2봉  유명한 문필봉 도착

                                            물이 없어 갑장사 뒷편에 용지샘으로 오름-철철 물이 흐름

바위틈으로 흐르는 물줄기-용지샘은 물이 천연수 약수

                                               헬기장 지나고

                                        층계와 정자를  지나면  정상-한 여름에 이열치열

                                              잘 설명된 새로운 갑장산 표지석

                                                  오래전의 갑장산 표지석

                                 갑장산 넘어 용포, 비룡, 신오, 수정 -잿마에는-친구집-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산악회 백용순 님이 회원들과 표지석 새움

                                                백길 바위, 나옹바위, 사랑바위, 시루봉, 석문이 조금 내려가면 존재

 

 

                                                   하산 시작

 

                                           갑장사뒤 대나무 숲

                                            고려시대 중기의  3층석탑이 있는 갑장사

                                      돌계단 밟으며 대주차장으로 하산

                                          갑장사 소형 주차장에서 도로따라 하산 -몸시 피곤

 

                                              계곡에서 세수

                                               무아지경으로 하산

 

-------------------------------------------------------------------------

다음부터는 갑장산 9곡을 촬영하며 하산

                                     명승지의 대표적인 멋진 화장실로 우수한 화장실로 소문

 

                                         연악식당과 구름다리

 

                                     상주 남부 초등 입구에서 제1연악구곡이 시작되는 안내판인데 9곡부터-1곡으로

 

                                             제1곡-덕영암, 제2곡-사군대, 제3곡-풍암, 제4곡-영귀정, 제5곡-동암

                                             제6곡-추유암, 제7곡-남암, 제8곡-별암, 제9곡-용추

 

                                       위의 연악구곡은 중국의 어느 고장 9곡을 연상하며 선비들이 풍류룰 즐긴곳

                                        상주의 고등학교 교사가 발굴하여 알려짐 

                                           제1곡은  남부초등 지나 유명 식당 앞에서 시작됨

 

연악구곡(淵嶽九曲) / 남계(南溪) 강응철(姜應哲)

연악구곡은 남계 강응철(1562∼1635)이 상주시 청리면 지천동 지천(智川)에 설정하고 경영했던 구곡원림이다. 연악산은 정상에서부터 동쪽과 서쪽으로 계곡물이 흘러 내려 절경을 이루는데 연악산 서쪽으로 흐르는 계곡에 연악구곡이 있다. 강응철은 연악산 서쪽 10리에 연악구곡을 설정하고 아홉 굽이를 명명하였는데 제1곡이 탁영담(濯纓潭), 제2곡이 사군대(使君坮), 제3곡이 풍암(楓岩), 제4곡이 영귀정(詠歸亭), 제5곡이 동암(東岩), 제6곡이 추유암(秋遊岩), 제7곡이 남암(南岩), 제8곡이 별암(鱉岩), 제9곡이 용추(龍湫)이다.

남계 강응철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자 학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鄕兵)을 모집하여 상주(尙州)를 지켰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명보(明甫), 호는 남계(南溪)이다. 1592(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을 모집하여 상주를 지켰다. 후에 정기룡(鄭起龍)의 의병과 합세하여 각지에서 왜병을 무찔렀다. 벼슬은 찰방에 이르렀으나 광해군의 난정에 분개하여 은퇴하고, 향리에서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다. 상주의 연악서원(淵岳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남계유고(南溪遺稿)』가 있다.

연악구곡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일묵재(一默齋) 김광두(金光斗 ; 1561∼1608)이 쓴 ‘연악동에 노닐며 남계옹에게 주다.’라는 시이다.

시냇물 차갑게 구곡을 돌아 흘러내리네

암화 핀 곳에는 새로운 이끼만 수놓았네

연악동에 좋은 곳 많다고 말하지 말아라

세상에 속된 객이 찾아올까 걱정 되어라

옅은 구름 아래에서 푸른 풀을 밟으며

병이 든 늙은이 유연히 봄 맞으며 하네

버들 꽃이 핀 앞내는 새로운 모습 하니

시를 짓는 일이 정신을 넉넉히 돕도다

『南溪先生文集』 卷3 「附錄」 〈遊淵嶽洞贈南溪翁〉

무첨재(無忝齋) 정도응(鄭道應 ; 1618∼1667)은 우복 정경세의 손자인데 남계 강응철의 둘째 아들, 외운 강용량의 별장에서 함께했던 일을 서로 지으면서 연기에서 연악구곡을 언급했다.

여러 산이 눈에 덮이어 모두 아름다우니

좋은 일은 조물주가 시기를 한 것이라네

죽상에 홀로 앉으니 맑아 잠들지 못한데

은은한 향기가 때로 가지에 퍼지네

첩첩의 연악산 아홉 굽이 시냇물 흐르니

지팡이 짚고 석교를 건너 서쪽으로 가네

다리의 서쪽에 나는 또한 이름 새기고

그 옛날 바위에 새긴 이름을 찾아보리라

『淵嶽文會錄』. 상주박물관, 2009. 32쪽.

성덕징(成德徵)이 쓴 「연악서원전후사적편람기(淵嶽書院前後事蹟便覽記)」에 연악구곡에 관련된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갑장산(甲長山)은 연악산의 다른 이름이다.

“연악서원은 갑장산 아래 물과 돌이 맑고 기이한 곳이 있다. 아홉 굽이 시냇물이 서원의 앞으로 곧바로 쏟아지니 빼어난 경치로 명성이 있는데 오직 탁영담, 풍암, 영귀정이 그 중에 가장 뛰어난 굽이이다.”

삼백재(三白齋) 강사흠(康思欽)의 시에도 연악구곡에 관련된 기록이 있다.

한 맑은 시냇물이 구곡을 따라 흘러가니

단풍이 거꾸로 비치어 물속이 가을이네

좋은 친구 따라서 시내의 물결을 바라보니

덧없는 삶 반평생 근심이 사라지는구나

『三白齋集』 卷1 〈與外南諸益 遊智川溪亭 次主人韻 八月下浣〉

이러한 기록을 볼 때, 연악산에 연악구곡이 설정되어 경영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악구곡을 대상으로 읊은 구곡시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연악구곡의 경영을 살펴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남아 있는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을 가지고 연악구곡을 재구하려 한다.

제1곡. 탁영담(濯纓潭)

탁영담은 상주 남부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는 시내에 위치한다. 현재는 지형이 변하여 탁영담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 못이 있었던 지점에 보가 설치되어 있어서 옛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흐르는 시냇물이 고여서 만들어진 못이 탁영담이다. 그 물이 맑아 갓끈을 씻을 만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제2곡. 사군대(使君坮)

탁영담에서 시내를 따라서 약 4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연악서원에 이르는데 사군대는 연악서원 앞의 시냇가에 있는 바위 대(坮)이다. 옛날에는 시냇가에 높이 솟아 있었으나 현재는 홍수에 의하여 상류에서 떠내려 온 바위와 흙들이 사군대를 묻어 버려 그 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시냇가에 있는 바위의 윗부분을 통하여 사군대의 형체를 짐작할 뿐이다.

제3곡. 풍암(楓岩)

사군대에서 시내를 따라 약 6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시내를 가로질러 놓은 다리에 이르는데 이 다리 아래 시내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 위로 맑은 시냇물이 흘러가며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데 이 굽이가 풍암이다. 풍암은 연악구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굽이로 꼽히는데 시회를 열 때마다 선비들이 이 굽이를 찾아서 시를 짓고 연회를 펼쳤다. 남계 선생의 제자인 하충룡(河翀龍)이 선생의 만사를 지으면서 연악구곡의 제3곡 풍암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뒤로 사십 년을 함께 살았고

문하에 서로 좇은 지는 몇 년 되었는가

여석 일곱 관동들과 풍암 위로 올라가

꽃이 필 때마다 이르러 함께 노닐었네

은혜는 고봉과 같아서 아직 갚지 못하고

정은 바다처럼 깊어 죽도록 갚기 어렵네

어찌하여 병이 들어 꿈결처럼 가셨는가

서산을 바라보니 눈물이 그치지 마라

『南溪先生文集』 卷4 「挽詞」

제4곡. 영귀정(詠歸亭)

풍암에서 물길을 따라 약 23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시내를 가로질러 놓인 다리에 이르는데 이 다리 위로 널따란 너럭바위가 자리한다. 이 바위가 있는 굽이기 영귀정이다. 과거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 자취는 찾을 수 없었다. 원래는 너럭바위가 지금보다 더 넓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바위의 일부분이 도로에 편입되며 훼손되고 시내 건너편과 연결하는 다리를 너럭바위 위로 내는 바람에 또 바위가 훼손되어 현재의 옛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다.

제5곡. 동암(東岩)

영귀정에서 시내를 따라서 약 27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굽이에 이르는데 이 굽이가 동암이다. 시냇물이 이 굽이에 이르러 낙차를 이루며 떨어지고 다시 흘러 좁다란 바위 사이를 흘러가는데 바위와 시내, 그리고 주변의 푸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시내 건너편과 연결되는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굽이의 일부분이 훼손이 되었다.

제6곡. 추유암(秋遊岩)

동암에서 시내를 따라서 약 28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며 아름다운 경관을 형성하는 지점에 이르는데 이 굽이가 추유암이다. 바위 위를 흐르는 시냇물이 비스듬히 낙차를 이루며 흘러서 아래에 제법 넓은 못을 만들었다. 못의 물은 바닥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맑아서 유람객이 노닐기에 알맞은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못에 임해 있는 바위에서는 ‘추유암’ 세 글자가 전서(篆書)로 적혀 있는데 마모되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제7곡. 남암(南岩)

추유암에서 시내를 따라 약 25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두 시내가 합류하는 지점 아래 부분에 시냇물이 바위 사이로 흐르며 작은 폭포를 형성한 지점에 으르는데 이 굽이가 남암이다. 바위의 중앙 부분이 흐르는 시냇물에 의해 오랜 세월 파여 움푹 들어갔고 그 아랫부분은 제법 넓은 못이 만들어졌다. 바위 사이를 낙차를 이루며 흘러 내린 물이 못에서 잠시 머물렀다 다시 흘러간다. 현재는 주변의 개발로 인하여 옛날의 모습을 찾기 어렵지만 바위와 맑은 물이 어우러져 이룬 경치는 아름답다.

제8곡. 별암(鱉岩)

남암에서 시내를 따라서 약 3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을 만나는데 이 굽이가 별암이다. 맑은 시냇물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며 폭포를 이루고 폭포를 지나온 시냇물이 조금 아래에서 제법 넓은 못을 만든다. 별암은 자라모양의 바위가 자리하는 굽이인데 못의 오른쪽에 있는 바위가 자라의 형체를 하고 있다. 이 굽이는 다행히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훼손이 되지 않아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제9곡. 용추(龍湫)

별암에서 약 28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바위를 따라서 시냇물이 흐르며 여러 단계 폭포를 이루는 시내에 이르는데 이 굽이가 용추이다. 커다란 바위 하나로 이루어진 이 굽이는 거리를 두고서 바라보며 바위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이 마치 용이 서려 있는 듯 한 느낌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이 굽이는 남계 강응철의 은거지 경계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악구곡의 발원지가 된다.

참고 : 김문기, 강정서. 『경북의 구곡문화(2)』.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12. 250∼260쪽.

사진출처 : 구미대 세무회계과, 참 좋은 사람(https://blog.naver.com/igryusan/222085340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