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명산탐방

둔주봉(275m, 한반도지형전망대)-등주봉(384m)-독락정(옥천)

문장대 2023. 5. 19. 12:35

* 2023년 5월18일(목) 문장대 이종하는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소재 둔주봉과 등주봉을 등산했다. 2봉우리는 그리 높지 않고 대청호의 조망이 좋으며 맑은 공기가 좋아 옥천군민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다. 

 

* 이동내용 : 옥천군 안남면 사무소 앞 대형주차장-골목길 지나 느티나무-안남교회 앞길-농로겸 임도로 500m 이동-등산로 입구 화장실- 수많은 계단과 야자수 깔판길-운동기구 2곳-한반도 지형 전망대(둔주봉)-근래 개방된 등주봉 왕복-금강변 독락당 답사

 

* 등산내용 : 오전에 안남면 소재지 300m 안내-수한도로 첫 골목길에 옥천 돌판과 갈멜산 수도원 옥천 복지원 방향으로 오르면 부리기재 입구인 탑산이 마을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용문산을 다녀오고 오후에 막지봉을 답사하기 위해 장고개를 미리 가보았다. 막지봉을 오르는 가장 지름길은 안내-회남로로 가다가 도율리-용촌리-담양리로가다가 막지리 가는 3거리에서 좌측으로 조금 가면 장고개이다. 이곳은 상당히 높이 올라온 지점이라 막지봉을 오르기 쉽다. 주민에게 막지봉오르는 길을 소개받고 난뒤 다시 안내면소재지를 지나 안남면으로 향했다. 37번도로를 만나 조금가다가 안남면 방향으로 내려서서 좌측 지하도로 이동하니 안내중학교와 화인산림욕장이 보인다. 농기계임대 사업장을 지나고 조헌묘역의 3거리에서 우측으로 청성면-안남면 방향으로 가니 금방 면사무소, 보건소, 우체국이 등장한다. 좌측에는 안남초등학교도 보인다. 넓은 대형주차장에 무료주차하고 우이관 커피골목이나 안남 초등학교 골목으로 가다보면 느티나무가 등장한다. 느티나무있는 3거리서 어느곳으로 가도 등주봉 방향이다. 안남교회 앞을 지나 빙돌아 500m 가니 화장실도 2칸있고 운동기구가 있는 등주봉-둔주봉 들머리다. 경사가 심하지 않는 계단길과 야자수잎 깔판을 딛고 자주 쉬며 오르니 둔주봉(한반도 지형 전망봉)이다. 오르는 곳곳 쉼터가 존재하여 재미있게 올랐다. 먼저 첫봉우리인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오르니 시설이 좋고 파랑산불초소아 정자까지 존재한다. 볼록거울로 한반도 지형을 촬영하니 멋진 한반도 지형이 된다. 거울로 보지 않고 그냥 사진을 찍으면 동해안 지역과 서해안 지역이 반대이다. 10분간 조망을 하며 쉬고 놀았는데 그동안 폐쇄되었던 등주봉은 해제되어 등산이 가능하다. 저멀리 등주봉을 쳐다보니 상당한 거리와 높이가 있어 보여 움찔하였으나 둔주봉을 떠나 제1봉인 등주봉을 향했다. 이름이 비슷하여 다소 혼둔이 되지만 정자가 있고 시설이 좋은 둔주봉과 등주봉은 완전히 다른곳이다. 등주봉에는 묘지가 존재하며 작은 표지석이 보인다. 체력이 다소 힘이 들지만 요새 해가 길어 해지기전에 충분히 2봉우리를 완주했다. 하산하여 초등학교 도랑건너 우렁이 탕으로 식사를 하고 우이관에서  커피를 사먹고 오후 6시30분에 상주자택으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니 약간 어두어지고 있다. 오늘은 안내면 용문산과 안남면의 등주봉 2산을 등산했다.

 

안남면사무소 앞 대형주차장 주차하니 멋진 우이당 커피전문점 성업중

 

 

안남교회 앞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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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도 답사했습니다.

 

옥천 독락정(沃川 独樂亭)은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에 있는 정자이다. 1998년 6월 26일 충청북도의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독락정은 조선 선조 40년(1607) 절충 장군 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 세운 정자이다.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선비들이 모여 지내던 정자의 구실을 하다가, 후대에 와서는 유생들의 학문 연구 장소로 이용되었다. 영조 48년(1772)에 고쳐 지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건물 규모는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정면에는 당시 군수였던 심후의 ‘독락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마루에는 송근수의 율시기문을 비롯하여 10여점의 기문액자가 걸려 있다.

현지 안내문[편집]

이곳은 선비들이 모여 담론을 즐기던 정자로써 후대에는 서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630년에 절충장군 중추부사를 지낸 초계 주씨 주몽득이 처음 세웠다. 현종 9년(1668년)에 군수 심후가 현판을 썼으며, 대청에는 송근수(宋近洙, 1573-1635)으 율시기눈이 새겨져 걸려 있다. 영조 48(1772년)에 중수하였고, 고종 25년(1888년)과 1923년에 다시 보수하였으며, 1965년에 문중에서 다시 고쳐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양 측면은 툇마루를 설치하기 위해 내부를 4칸으로 만들었다. 이 정자의 이름을 따 마을 이름도 독락정이라 부르고 있다.[1]

<자료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