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명산탐방

갈미봉, 마양산(문경시 가은읍)

문장대 2020. 5. 14. 20:37

* 등산지 ▶갈미봉, 마양산(문경시 가은읍)

 

 

 

가은읍 갈미봉, 마양산을 답사하려고 노력했으나 들머리를 몰라 여태 답사 못했는데 마침 이강일 선생님(아름다운산행님)이 며칠전 답사하신 등산기를 보고 오늘 2산을 기분 좋게  다녀왔다.  갈미봉은 갈전리 마을회관을 지나 임도를 1키로 미터 올라 숯고개에 주차하고 쉽게 올랐고, 마양산은 가은 중고 근방 가은시내 입구 3거리에 주차하고 다녀왔습니다. 산아래 주차하여 가장 가까운 거리여서 큰힘 들지 않고 2산을 답사했다.  2산 모두 산아래  들머리 주변에 주차공간이 2-3대 정도 있네요.

 


 

 

 

가은시내 119센터에서 500미터 거리에 있는 갈전1리 (갈밭마을-아차마을) 마을회관을 지납니다. 마을 표지석도 멋지다. 시내에서 영강다리 건너 남쪽 500미터에 갈전1리 존재

 

 가은읍 갈전1리 마을회관 넓은 마당에 주차가능하지만 차를이용해 1키로 미터 임도로 가면 대형 물통이 나타나고 저음리(돌마라미)동네 내려가는 숯고개가 나타난다. 그곳에 2군데 주차공간

 

정자도 멋지고  마을 중간을 통과하면 대형 물통이 임도 옆에 있는 것을 보며 지난다.

마을 좌측 강따라 가는 길은 아니고 반드시 마을 중간을 통과합니다.

 

 

 

 마을을 관통하여 1키로 미터의 좁은 길을 오르니 제일 높은 고개인 숯고개에 도착한다. 아마 200미터 높이 오른 같다. 중간에 혹시 차를 만나면 교차가 힘들같아 불안하게 오르는데 2분의 할머니가 등산갔다가 내려온다.

 

 

 비포장 좁은도로이며 저기 넘어 동네는 돌마라미 동네이고 저음리하고 불린다. 저음리는 산돼지 소리라고 합니다. 이곳은 산돼지 소리가 많았다고 합니다. 오지중의오지

 

 

고개 양쪽에 주차공간이 각각 2-3대 정도 넓이다.  내차는 고개 북편에 주차하고 고개 남쪽 주차공간에는 고사리 껵는 여자 분들의 차가 주차해 있다.

 

 

등산로는 다소 희미하지만 오를만하고 주변에 묘지가 많아 묘지 오르는길이 이리저리 있어 어느 곳으로 올라도 지능선으로 합류된다.

 

 

본 능선을 오르니 등로가 뚜렸하다.  작은 봉우리를 넘고 시원한 등산로를 따라 가는데 우측 아래 별장인지 주택인지 멋진 집들이 많다. 삼약사 사찰도 건설중이다.

 

 

 

 최대한 차로 올라 높은 숯고개서 출발하니 쉽게 갈미봉 정상에 도착 --  임도는 1키로 미터 산길은 1키로 미터 될듯 말듯 한 거리.  오르던 길로 하산했으나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 다시 우측으로 바로잡아  올라 숯고개 도착. 산길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선답자 이강일 선생님의 리본 - 덕분에 편히 올랐습니다.  3년전에 오르다가 들머리를 몰라 포기함.  이선생님의 등산기를 공부하여 쉽게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상은 둥근 토성 형태인데 땡벌이 우굴거려 겁이 납니다. 조심조심하고 하산

 

 

 

내려 오면서 찍어본  작은 바위-- 이산은 바위가 없는 참나무, 소나무 지역으로 흙산입니다.

 

 

 

  숯고개 갈미봉 들머리 임도 도착-고사리 채취하던 주민 차는 어디로 가고 빈터 도착 - 10미터 넘어 차를 회수하여 저음리 마을을 구경하러 내려갑니다. 갈미봉 등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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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약사 사찰 사진

 

 

바로 아래 독가촌이 보이더니 조금아래 삼약사 절 조경공사가 한창입니다. 이 깊은곳에 멋진 사찰이 존재하네요.

 

저음리 - 돌마라미 마을로 좁은 임도따라 지그잭으로 내려갑니다. 겁나는길이 이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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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마양산 등산 사진

 

 

저음리 마을은 모두 주택이 개량되어 별장이 되었고, 큰공장이 2군데 있으며 마을까지 2차선 도로가 이어지네요. 저음리서 멋진 길을 따라 내려오니 가은 공단이 영강 옆에 건재 성업중이고 우측으로 마성방향으로 올라가니 고개 못가서 가은 중고 입구 3거리 도착합니다.

 

 

 

 

똑바로 가면 마성방향- 좌측 으로가면 가은시내.  3거리 반사경 우측으로 묘지 오르는길이 있는데 그 길이 들머리

 

 

위사진 반대 방향에서 찍은 사진 --- 우측으로가는 길은  가은시내 방향, 똑 바로가면 농암방향,

좌측 반사경과 단풍나무 2그루 있는 시맨트 턱 넘어면 마양산 들머리, 저기 차 있는곳이 들머리

 

 

 

 

 

 

가은 돌비석 반대쪽 단풍나무 사이 들머리로 오르면 묘지길이 나타나고 묘지직전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살펴가며 오르면 700미터 거리에 마양산 등장- 이정표도 없고 좁은 낙엽 등산로가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산행, 이강일 선생님의 리본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표지석과 코팅지표지도 없는데 리본에 쓰여진 산이름과 높이가 전부이지만 청정지역입니다.

 

 

오지 산행 고수님들의 이정표가 많습니다.

 

 

 

 

 

마양산 출발지 원점도착

 

 

저기 멀리 보여지는 도로가에 주차한 차가 필자의 애마. 좌측 현수막과 단풍나무 사이가 마양산 들머리 입니다. 묘지 오르는 길이지만 넓고 뚜렸합니다. 묘지 이후는 조금 희미함.

 

2산 등산 사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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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1키로 거리 갈전마을 지나 유기 제조공방이 있는 방짜유기촌을 방문합니다.

 

 

 

우회도로에서 농암가는 도로변 방자유기촌 입구입니다.

 

 

 

이곳은 이봉주 유기장 선생님 유기공방입니다.

 

 

산전체를 조림하고 기와집으로 큰 건물을 지어 마치 한목마을 같은 큰 유기촌으로 유치원과 소성당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전에는 그냥 조그만 건물에서 놋그릇을 제조하는 줄 알았는데 무형문화재 유기장 선생님들이 계신 방짜 유기촌입니다. 한번 구경해보세요.

 

 

 

 

 

주차장도 넓고 시설이 대단합니다.

 

 

 

 

 

 

 

 

이봉주 유기장 선생님이 부인과 함께 건립하신 탁창여 선생님 공적비를 읽어 봅시다.

이곳은 이봉주 선생님이 조성하신 유기촌임을 여기 글을 보고 알았습니다.

 

 

 

 

 

 

 

 

 

교육 전수관도 있고

 

 

 

뒷산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조림하였고, 중간에 산책길도 있어 지상낙원임. 이정도 시설을 갖추려면 수백억원이 소요되었으리라 짐작--필자는 이곳에서 작약산을 오르는 길이 있나 살펴보느라고 다녀왔습니다.

 

 

 산책기로 내려오다가 가은시내 조망

 

 

 

 옥녀봉도 담아보았습니다.

 

 

방자 유기촌 답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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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방짜유기촌.

중요무형문화재 77호 방짜부분 유기장이신 이봉주옹이 운영하시는 납청유기촌은 조교인 아들을 비롯해 이수자 3명, 전수장학생 6명 등 10명의 제자 이외에 직원들과 함께 유기제작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살균과 중금속중화작용을 하는 건강식기로 오염된 환경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다시 그 소중함을 인정받고 있는 우리전통의 살아있는 지혜와 같습니다.

 

유기는 구리(78%)에 주석(22%)을 섞은 놋쇠로 만든 그릇을 말하며,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 반방짜, 주물로 나뉘고 있습니다.

방짜의 경우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마을, 반방짜는 전남 순천, 주물의 경우 경기 안성이 각각 유명한 산지로 꼽히고 있습니다.

 

 

  

금형에 놋쇳물을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나 반제품 형태의 주물유기를 두드려 만드는 반방짜유기에 비해 방짜유기는 처음부터 달궈진 놋쇠덩어리를 두드려 만드는 탓에 제작이 까다로워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제작이 까다로운 방짜유기는 정성어린 공을 들인만큼 잘 휘어지거나 깨지지 않고 비교적 색이 잘 변하지 않을뿐 아니라 망치자국이 은은하게 남아 있어 수공제품의 멋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봉주옹은 본래 방짜유기의 고장인 평북 정주군 납청마을 출신이십니다.

어머니가 유기 행상을 했지만 공장 문턱이 높아 어렸을 때는 유기제작 기법을 배울 수 없었는데, 광복 이후 월남한 뒤 22살이 되던 1948년이 돼서야 고향 지인이신 탁창여씨 아래에서 방짜기술을 배워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습니다.

 

시절이 바뀌어 유기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유기에 대한 믿음을 가지셨던 이옹은 어려운 시절을 ‘그릇’이 아닌 꽹과리와 징 등의 ‘악기’로서 버티셨고 유기를 많이 알리시는데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그결과 지금은 어느정도 유기의 장점을 알고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 입니다

 

1994년엔 지름 161㎝, 무게 98㎏에 달하는 세계 최대 징을 만들었으며, 청와대에도 방짜유기그릇을 납품해 유기장으로서의 최고봉의 위치에 오르셨고, 일상생활에서도 전통명품그릇인 유기의 생활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봉주옹이 만드는 방짜유기는 본래의 제작기법의 우수성을 보존하며, 현재는 경북 문경에서 이옹의 고향 납청마을처럼 유기공장이 가득찬 유기마을을 만들고자 이름을 방짜유기촌으로 짓고 유기제작기술의 발전에 힘쓰고 계십니다.

 

 

  

"일을 계속하니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를 잇고 있는 아들도 저만큼은 못하지요."

 

고령의 연세에도 방짜유기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세월이 흘러 손망치 대신 기계망치가 대신하고 있지만 유기의 합금 비율과 정성만은 변하지 않듯이

이봉주옹의 장인정신, 명인정신 또한 대를 이어 계속될 것임에 감사드립니다.

 이봉주옹의 명품 방짜유기 '전통명품유기전' 에서 만나보세요

 

 

 

필자의 고향에서 이런 멋진 유기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