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여행 이야기

팔량치-정령치 이야기 (신풍령-육십령도 포함)

문장대 2017. 8. 19. 12:30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사이에 팔량치가 있고 전북 남원시에 존재하는 정령치는 남원시 산내면과 주천면의 경계에 존재한다. 팔량치는 그냥 사람과 차가 지나는 고개인데 정령치는 멋지게 휴게소를 만들고 주치장을 설비해서 전망대에서 지리산의 많은 봉우리들을 볼 수 있어 풍광이 멋지다. 남원시장님 화아팅!

 

* 팔량치와 정령치

팔량치는 백두대간이 아니고 정령치는 백두대간의 일부분이다. 2산 모두 전북에 속해있고 현재 고속도로가 통과하지 않아 잘모르는 분이 많은데 과거에는 2산이 우리생활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고개이다.  하지만 산이름이 특이해서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고 필자 역시 많이 햇갈렸다.  이 두고개를 아는대로 소개하고 위성지도에 표시해봅니다. 이유는 백두대간 탐방 중 많은 분들이  고지인 이곳에 와서 관광을 하는 것을 보았다.


아! 대가야-30. 육십령, 팔량치를 넘어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과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경계의 주요고개로 등산로의 시작점이다.


   높이 513m. 북쪽의 상산과 남쪽의 삼봉산(1,186m) 사이의 안부에 위치한다. 함양군에서는 팔령, 남원군에서는 팔량이라고 부른다.

               

동쪽 사면은 비교적 급경사로 함양읍에 이르며, 서쪽 사면은 완경사로 남원군 인월면에 이른다. 동쪽 계곡을 흐르는 하천은 남강의 지류인 위천으로 흘러들고, 서쪽 계곡을 흐르는 하천 중 하나는 서류하여 광천으로 흘러들며, 다른 하나는 남동류하여 역시 남강의 지류인 임천강에 흘러든다. 결국 팔량치를 둘러싼 양쪽 사면은 같은 하천의 하곡으로 연결된다. 이 고개는 오래 전부터 군사·교통상의 요지였으며, 남원군 인월면 성산마을 주민들은 고개 너머 함양읍에서 농사를 지어 소출해가고, 함양읍 죽림마을 주민들은 함양장보다는 오히려 고개 너머 남원의 인월장을 더 많이 이용하는 등 영·호남의 문화가 교차하는 첫번째 관문이기도 했다. 부근에 신라때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성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팔령을 넘어 남원으로 진격해오던 왜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현재 남원-함양을 잇는 국도가 이 고개를 지나며 북쪽에 88올림픽 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을 더욱 원활히 이어준다.


* 정령치

우리나라 고대국가 삼한시대인 마한 시대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이 이곳을 점령해 살았다고해서 정령치라고 하며 유명한 백두대간 고개이다.  지리산 노고단 입구인 성삼재와  정령치는 고리봉 만복대로 이어지는 아주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백두대간 탐방로이다. 따라서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탐방한다.




2017년 8월 17일 오전 이곳 정령치를 지나다가 휴게소 위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너무 피로해서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사진만 찍고 큰고리봉으로 향했다. 이날도 많은 관광객들이 경치를 즐기고 이었다.


    

* 정령치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이다.    높이 1,172m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로, 지방도 737번이 지나간다. 서산대사 휴정( 1520~1604)의 《황령암기( )》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을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는데 이로 인해 정령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정령치 고갯마루에 서면 동쪽으로는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남원시가지가 보여 전망이 뛰어나다. 정령치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서북쪽 능선을 타면 고리봉~세걸산~부운치~팔랑치~바래봉이 이어지고, 남쪽 능선을 타면 만복대~묘봉치~고리봉~성삼재로 연결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령치 [鄭嶺峙] (두산백과)

* 육십령 : 경남 함양 서상면과 전북 장수 장계면 사이의 주요고개

* 신퐁령 :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 사이의 주요고개이며 빼재라고 한다.

다음 신풍령과 육십령 위성지도


붉은선은 백두대간 등산로이고 육십령-신풍령은 고속도로 개발 되기전엔 주요 도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