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여행 이야기

경북선 역 근방 명승지 소개--청리역

문장대 2017. 2. 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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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 상주사이의 청리역은 이직도 성황리에 운영되는 멋진 역이다. 주변에는 서산, 갑장산, 기양산, 수선산 등이 있고 용흥사, 갑장사, 광덕사, 수선사 등 고찰이 있으며 조선시대 의료  시설인 유명한 존애원이 있다. 등산객은 주로 갑장산을 등산하고 있으나 근래는 기양지맥 탐방을위해  돌티고개로부터 수선산, 기양산, 신암산을 경유하여 마공리 마을회관 마공논공단지로 내려오기도 한다. 서쪽으로는 덕산리가 있는데 그곳엔 상주상무 선수단 숙소가 존재한다. 쭈욱가면 외남면 회상, 소상이 나타나 우측으로 가면 상주-개운저수지로가고 좌측으로 가면 공성면 용신리로 간다.  봉산리서 쭈욱가면 백두대간 개터재, 외남면 소상리에서 가면 회룡재가 나타나는데 등산객이나 현지주민들 아니면 권하고 싶은 곳은 아니다. 경북대 상주캠프스도 가깝고 학하리, 마공리, 율리, 수상리가 서쪽에 존재한다. 상주쪽으로는 월로리, 지천리, 양촌리, 원장리가 있으며, 옥산쪽으로는 가천리, 청상리가 있다. 청리면 수상리는 천하장사이며 상주의 대표적 씨름꾼 임용재의 고향이다. 청하리는 청리면 소재지임. 율리에 존재하는 존애원은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의료기관으로 백성들의 병치료에 큰 공적을 이루었으며 갑오경장까지 존재하였다. 이후 서당, 경로당, 관혼상제의 예식장으로도 쓰였다. 현재의 세브란스 병원같은 사설의료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 찾아가보면 고색창연하고 서글프지만 조선시대때는 환자와 의사들이 문정성시를 이룬곳이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퍼온글을 올려봅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89호. 조선조 상주지역의 향촌사회를 영도했던 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성람(成灠) 등이 1623년(인조 1)에 사설의료기관으로 건립하였다.

율리의 넓은 들판이 보이는 얕은 언덕 기슭에 자리잡았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1칸반으로 중앙 2칸이 우물마루를 깐 대청이고, 대청 좌우에는 1칸씩의 온돌방을 두었다.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고, 뒷벽에는 각 칸에 판벽(板壁)을 치고 쌍여닫이 널문을 달았으며, 후면에는 쪽마루를 시설하였다.

온돌방과 마루 사이에는 쌍여닫이 굽널 띠살문을 달았고, 방의 앞쪽은 하부에 머름중방[遠音中枋 : 머름 위에 가로로 낀 창틀] 위에 쌍여닫이 띠살창문을 내었으며, 배면에는 2자 정도 폭의 벽장을 설치하였다. 얕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대청 상부가구는 5량가인데, 전면 퇴칸 상부는 퇴량을 걸고 내진주(內陣柱) 위에서 대량과 합보[合梁]시키고 외진주와는 뻘목으로 보강하였다. 대량은 만곡이 심해 한쪽에는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없이 종량을 그대로 얹었고, 종량 위에는 원형 판대공(板臺工)을 세워 상부가구를 결구시켰다.

수 차례의 중수와 중건으로 그 원형은 다소 변형되었으나, 상주지역의 사설의료기관으로서, 또 18세기말 이후에는 양로당·서당 등으로 다양한 쓰임새를 보인 공공적인 성격을 띠었던 건물이다

존애원(存愛院)은 임진왜란 뒤 질병퇴치를 자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뜻으로 세워진 사설의국이다. 김각(金覺) 성람, 이전, 이준, 강응철, 김광두, 정경세 등이 중심이 되어 1599년 (선조 32년) 설치하였다. 1599년은 상주에 두 계가 있었던 것을 기해낙사계로 합사(合社)한 해로 13개 문중의 계원은 24명이었는데 합계한 자리는 존애당(存愛堂)이었다. 이로써 보면 존애원 창설은 1599년이요 건물완성은 1602년이라 볼 수 있다.
 
* 존애원의 의의 및 가치 *
존애원은 미증유의 전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상주민의 고통을 스스로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의료국(私設醫療局)인 점에서 그 정신도 높이 살 일이지만 그 유래도 전국에서는 희귀하다 하겠다. 존애원은 의료활동만 한 의국이 아니라 낙사계의 회합 자리가 되어 각종의 행사도 치렀는데 특히 1607년 이후부터 갑오경장(1894년)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였던 백수회(白首會)를 개최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1607년의 존애원백수회(存愛院白首會)때는 송량, 김각, 정인홍, 윤전 등의 어른을 정경세, 이준, 김지복, 김지덕 등의 자질이 모시었다. 낙사계는 1797년(정조 21년)왕으로부터 대계란 칭송을 받고 1906년 한광(韓匡)이 아들의 관례(冠禮)할 때 존애원에서 <대계백수회>를 가진 바도 있다. 한마디로 존애원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던 상주 선비들의 박애정신에서 탄생한 사설의료국이었음과 동시에 향토 사랑을 실천한 낙사계원들의 모임터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