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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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3국이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갈 무렵 낙동강 중 · 하류 지역에서는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자리를 잡아 갔다. 이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통일된 국가 체계를 갖추지는 못한 채 ‘간’이라는 부족장들이 각각 자신의 영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신비한 일이 일어나 왕국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어느 날 부족의 간들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령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구지봉(옛 구수봉)에 가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면 임금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간들이 예언대로 했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왔다. 상자 안에는 여섯 개의 황금알이 있었는데, 그 알에서 여섯 명의 아이가 나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나라 이름은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였다. 이후 가야 왕국들은 서로 도우며 발전했다. 가야에서는 낙동강 하류 지역의 기름진 평야를 바탕으로 벼농사가 발달했고, 품질 좋은 철을 생산해 중국과 왜(일본) 등지에 수출하기도 했다. 발달한 문물을 왜에 전해주었는가 하면, 바다를 주름잡는 해상 강국이 되어 신라를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라와 백제가 세력을 넓히기 시작하자, 가야는 차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가야는 통일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작은 나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힘이 약했던 것이다. 게다가 가야는 5세기에 백제, 왜와 함께 신라를 공격했다가,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아 세력이 크게 약해졌다. 결국 562년에 신라에 흡수되어 가야국은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① 가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품질 좋은 철을 생산하는 나라였다. 솜씨 좋은 장인도 많아서 가야의 철기는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② 철을 제련해 만든 말갖춤으로 말을 장식한 가야의 병사. 한때 가야는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군사력이 강했지만, 통일 국가로 성장하지 못해 점점 약해졌다.
심화
가야는 통일 왕국을 세우지 못한 채 각각 신라로 흡수되었다. 먼저 흡수된 곳은 여섯 가야 가운데 가장 힘이 강했던 금관가야였다. 532년에 금관가야가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한 뒤 차례차례 신라에 합쳐졌으며, 562년에 마지막으로 대가야가 흡수되면서 가야는 완전히 사라졌다. 신라는 가야 유민들을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왕족은 귀족으로 대접했다. 삼국 통일을 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김유신도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12대손이며, 가야금을 전한 우륵도 가야 출신이었다.
가야는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정교한 솜씨뿐 아니라 동물이나 사람 모양의 독특한 가야 토기도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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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토기출처: 학습용어 개념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