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명산탐방

쌀개산, 월류산(구미)

문장대 2021. 12. 11. 19:45

* 등산지 ▶ 쌀개산(224봉), 월류산(342봉)

* 등산인 ▶ 문장대 이종하 혼자

* 등산일 ▶ 2021년 12월 11일(토)

* 등산경로 ▶구미시 선산읍 포상 1리 선산 창고 앞-마을 끝-쌀개산-월류봉-월류산-울고개-소재리(오미기마을)-정붕선생신도비-포상 1리 선산 농협창고 정자 앞

 

 

* 등산내용 ▶쌀개산, 월류산은 포상리의 뒷산으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선산읍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순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이곳의 선 답자인 안양 사시는 아름다운 산행 이강일 선생님의 등산기와 댓글 안내로 2산을 답사하였다. 선산읍 소재지에서 무을-선산 톨게이트 방향인 서쪽 도로로 1킬로 미터로 가다가 봉곡리-포상리 길림 길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선산농협 창고와 정자가 있는 곳이 2산의 들머리다. 포상 1리 승강장 앞 공터에 주차하고 마을을 중간을 향하여 직통으로 산으로 오르면 된다. 묘지 1기가 있는 앞으로 오르면 쌀 개산에 도착한다. 조금만 신경쓰면 누구나 알바없이 외길로 오를 수 있다. 급경사 낙엽길이 오르기 힘들지만 여러번 쉬고 오르면 쌀개산에 금방 도착한다. 높이는 224봉이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면 엄청 높아 보인다. 조금 쉬다가 서쪽 방향의 뚜렷한 능선을 따라 오르는데 평탄하여 쉽게 월류봉까지 갈 수 있다. 월류봉은 월류산의 전위 봉이다. 조금 더 가면 월류산이다. 월류산에서는 등산길이 3거리로 갈라지는데 똑바로 가도 봉남리와 소재리 사이 도로에 접속하고 약간 우측인 1시 방향으로 내려가도 역시 오미기 마을인 소재리 외딴집 앞에 도착하고 15번 도로에 합류한다. 이곳은 울고개 근방이다.

 

  월류산 정상에서 조금 쉬다가 나무에 매어둔 산이조치오 리본에 우측으로 내려가는화살표 표시가 보여 급 내리막 낙엽길로 한참 내려가니 울고개 아래 도로에 도착된다. 울고개는 선산의 청백리 정붕선생님 후손이 임진왜란때 피난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도적을 만나 정붕선생 문집과 여러 재물을 약탈 당하고 항의하는 가족 한명이 살해 당하여 온가족이 울고 넘었다는 유래가 있는 유명 고개이다. 울고개부터는 출발지인 포상리 방향 15 도로 따라 내려간다. 좌측에 평화로운 소재리 오미기 마을이 보인다. 오미기 마을에는 정자와 소재지 못이 보인다. 길 옆에 계신 주민에게 소재리 뒷산에 대하여 문의하니 산이름은 모르고 오르는 길을 알려준다. 자기 선조들의 묘가 있다고 한다. 주민과 헤어져 도로따라 내려오니 우측에 신당 마을회관이 보이고 도로 옆에 신당 정붕 선생님 신도비가 존재한다. 몇 년 전에 웅곡리의 정붕 선생님 묘역을 답사한 바 있다. 신도비 뒤의 여러 고택과 신포서당, 정붕 선생님 사당을 살펴보고 신도비 앞의 돌비석에 쓰인 정선생님의 생애를 읽어 보았다. 마을 이름도 신당리이니 정붕 선생님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의 현장을 촬영하고 조금 걸어오니 애마를 주차한 선산농협 창고와 정자 앞에 도착했다. 애마를 회수 후 소재리-봉남리-습례리-배시내를 빙돌아 낙남루가 반겨주는 선산읍  중심 시가지에 도착했다. 10년 전에 근무하던 직장을 일부러 찾아가 이리저리 살펴보고 추억을 회상하며 선산대교을 거쳐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상주 자택에 도착했다. 

 

선산읍 소재지서 무을 방향-선산톨게이트 2키로 미터 68번 도로가다가 좌측으로 300미터 들어가면 포상1리이다. 마을 뒤에 보이는 산이 쌀개산, 월류산이다. 마을입구 선산 농협 건물 좌측이 마을입구이다. 정자와 운동기구가 있네요.

 

 

 

 

  오늘 이동한 나의 이동 경로-오룩스 맵

 

안양사시는 등산인 이강일 선생님의 이동 지도는 나의 이동 경로 3배가 넘는 자세한이동 경로이다. 광덕산-자파산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이동경로가 위에 표시되어 있어 후답자는 위의 산들을 등산 할 때 참고 바랍니다.

 

                       오늘 이동한 오룩스 맵의 통계

 

 

                                오늘의 트랙 통계

 

 

                                   만보기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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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부터 오늘 이동하면서 촬영한 사진을 올립니다.

 들머리는 68번 도로에서 갈라진 소재지-봉남리 방향 2차선 15번 도로

 

 쌀개산 앞 포상 1리 마을 입구의 선산농협 창고가 기준들머리이다. 정자를 우측에 끼고 마을로 들어간다.

 

승강장에서 마주 보이는 마을 중간 직선 외길로 똑바로 산을 향하여 오른다. 좌측의산이 쌀개산이고 우측의 산이 월류산이다.

 

 

 

       마을 끝 비닐 온실 옆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오르면 뚜렷한 등산길과 묘지1기 옆으로 오름

 

  묘지부터 뚜렷한 급경사 낙엽길로 여러번 쉬며 500미터 정도 오른다.

 

 

  소나무 재선충병 걸린 나무 무덤이 능선근방에 존재-곳곳 존재

 

 능선에 도착하니 대산 선생님 리본 등장 -좌측이 쌀개산

 

 2020년 1월 15일 이곳을 답사한 이강일의 아름다운 산행 리본이 반겨준다. 쌀개산 225.7봉

반갑습니다.

 

 

 

                쌀개산을 이별하고 서남쪽의 멋진능선으로 고고!!

 

 

 멋진 바위 옆에 휴식

 

                 월류봉이라고 지도에 표시됨

 

지도상에는 월류봉인데

 

조금 더 이동하니 월류산 등장- 아무런 표시가 없고 리본에 쓰여진 이름으로 월류봉임을 파악

 월류산 정상에서 조금 쉬다가 산이조치오 리본의 화살표 보고 1시방향으로 내려갑니다.

 

하산 도중 만난 루핑천

 

명품소나무가 재선충에 병들어 갑니다.

 

울고개-15번 도로에 도착하니 외딴 농가 2채보이고 100미터 거리에 울고개(봉남리와 소재리 사이)

정붕 후손이 도적을 만나 가족이 살해당하고 울고 넘어왔다는 전설의 울고개-양반의 후손이라도 못된 도적에게는 속수무책인 당시의 생활상과 치안상태를 한탄합니다.

 

 

 

 

15번 도로를 따라 내려오며 좌측에 보이는 오미기 마을 뒷산이 250봉 정도인데 태산 준령 같네요

 

선산고, 선산 중 뒷산인 장원봉과 비봉산

 

 오늘 이동한 쌀개산과 월류산

 

          포상리 도로 옆 신당 정붕선생님 신도비-이곳을 신당리, 신포마을이라고도 함

 

 

신도비 뒤의 정선생님에 관한 글

 

신당(新堂) 정붕(鄭鵬)은 퇴계 이황(1501-1570)보다 반 세기가량 앞서 활동한 유학자이다. 그는 세조 13년(1467)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중종 7년(1512) 세상을 떠났다. 타계한 해 그는 46세였는데, 연산군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정붕은 청송 부사 관사에서 순직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직 어리고 집이 너무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경비가 없었다. 사정을 잘 아는 경상 감사 방태화(方太和)가 영남 지역의 여러 수령(군수나 현감 등)들과 상의하여 장사를 치렀다. 풍기 군수 임제광(林霽光)은 직접 묘갈명을 쓴 비석을 배에 실어 낙동강 물길로 선산까지 운송했다. 청송부사때 자기를 천거해준 영의정 성희안이 잣과 꿀이 먹고 싶다고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잣은 높은산에 있고 꿀은 백성의 벌통에 있다고 하며 영의정의 청을 거절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의 글이 고등학교 한문교과서에 나온다고 한다. 그의 안상도와 도학은 유명하다. 

 

                   신당 정선생님의 사당-바로 앞에는 신포 서당

 

 

  아마도 신당선생의 후손 종가 집 같음-문패는 정충현.  사람이 살지 않네요.

 

 

            신도비에서 100미터 내려오니 출발지인 포상1리 마을 정자 앞 원점 도착

 

 

 마을 입구 정자와 운동기구 앞

 

  애마회수후 소재리-봉남리 등 주변마을을 둘러보고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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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정붕선생님의 묘소와 선생님에 관한 여러 이야기

 

무을면 웅곡리(이장 양진모), 일명 곰실 마을에 청백리의 표상인 신당 정붕 선생의 묘소가 있다. 신당(新當) 정붕(鄭鵬) 선생(1467∼1512)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학자이며, 해주인(海州人)으로 할아버지는 유(由)이고, 아버지는 현감 철견(鐵堅)이며, 가학을 계승하고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했다.연산군 10년(1504년) 교리(校理)(정5품 관직)로 있으면서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영덕에 유배되었으며, 무오사화·갑자사화로 많은 사림파가 죽임을 당할 때 현명하게 처신해 몸을 보존했다. 1506년 중종 반정으로 다시 교리에 복직되어 상경 중 병으로 사퇴하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와 학문에 열중하고,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정붕 선생은 천성이 매우 청백해 의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았다는 일화들이 전해질 정도로 현대사회 청렴한 공무원의 표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붕 선생이 국가적인 위인으로 얼을 높이 기릴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또,“공무원들의 기본자세를 확립하고, 경각심 차원에서 묘소를 참배해도 될 만한 장소로도 마땅하다”는 것이다. 무을면에서는 테마관광지 발굴 차원에서 묘소 입구 도로변에 ‘신당 정붕 선생의 묘소’ 안내 표지판을 새롭게 설치했다. 또, 진입로에는 방문객들을 위해 왕벚꽃 나무 등을 식재했다. 이곳 정붕 선생의 묘소가 웅곡리의 마을자랑이 되면서, 무을면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선산읍 포상리에는 신당 정붕이 학문을 닦던 신포서당이 있다.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백성 집의 꿀통 속에 있으니- 고교 한문교과서에 실린 이야기


정붕 선생이 절친한 친구인 좌의정 성희안의 소개로 청송부사가 된 당시 성희안이 “청송고을에는 잣과 꿀이 많을 테니 조금만 나누어 보내 달라”고 했을때 정붕 선생은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백성 집의 꿀통 속에 있으니 부사가 어찌 이것을 구할 수 있으랴”고 답해 부사로서 잣과 꿀을 많이 거두어 먹고, 또 생기는 것도 많을 것으로 짐작한 성희안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잘못을 후회했다.  


박명숙 기자 parkms01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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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실 마을인 웅곡리의 재실과 정붕선생님 묘소를 3년전 답사한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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