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여행 이야기

봉정사와 학봉 종택

문장대 2018. 8. 3. 14:34

* 여행지 : 안동 서후면의 봉정사와 학봉 종택

* 여행인 : 문장대(이종하) 부부

* 여행일 : 2018년 8월 3일(금)


-여행기-


  어제 의성 단촌의 고운사에 다녀온 이후 오늘은 안동 서후면에 있는 봉정사를 답사했다. 봉정사는 672년(문무왕 1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대장전(殿)이라 불렀으나 뒤에 극락전(殿)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 1972년 해체·수리할 때 중앙칸 종도리() 밑에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368년에 옥개() 부분을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이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그보다 100∼150년 정도 앞섰으리라 짐작된다. 건물의 전면()에만 다듬질된 석기단()을 쌓고 그 위에 자연석 초석을 배열하여 주좌()만을 조각하였고, 초석 위에는 배흘림기둥)을 달았고 전면 양협간()에는 살창을 달았는데, 전면의 판문과 살창은 수리할 때 복원된 것이며 수리하기 전에는 3칸 모두 띠살 4분() 합문()이 달려 있었다. 이 건물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이어받은 건물로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 가치가 높다. (두산백과에서 퍼온글임)


  안동 봉정사는 의성 고운사의 말사이지만 극락전이 그 존재 가치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라 전해지면서 유명해지고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삼복더위의 폭염이 작렬해도 천등산의 산바람을 맞아가며 우리도 비교적 오르막이 급한 건물들을 하나하나 관람했다. 봉정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되어 그존재가치가 더 해진 명 사칠이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등산코스가 개발되어 많은 등산인들이 등산을 하는곳이기도 하다. 차가 절앞 오르막까지 오르는데 관광철에는 절까지 걸어야 한다. 매표소 있는 절 입구에서 잘 판단해서 차로 오르면 절까지 거의 가서 주차 가능하다. 오르는 도중 차를 만나면 교차공간도 있어 오르 내림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어린이는 1,000원이며, 성인은 1인 2,000원이고 65세 이상은 무료입장이다. 사찰에서 흐르는 식수는 가뭄으로 메말라 개인적으로 물을 소지해야한다. 극락전 앞 마루에 앉아 극락전을 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멋진 봉정사는 큰 아들이 군시절에 상관을 모시고 왔던 곳이라고 애기 한적이 있던 곳이다.  안동과 의성에서 대학생활과 군생활한 관계로 안동과 의성에 대해서는 아들로부터 자주 좋은 관광지를 들은 바 있다. 봉정사 관광 후 귀가 하면서 학봉 구택과 바로 옆에 있는 학봉 기념관을 관람했다. 학봉 김성일의 임진왜란 전후 행동은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안동은 나도향이 보통학교 교사로 1년간 근무하여 20대초에 발표한 "청춘"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배경의 도시이고 영호루, 갈라산이 언급된다. 벙어리 삼룡이, 뽕, 물레방아 등을 발표하고 25세에 요절한 의학도이며 의사집안 출생인 그가 일찍 사망한 것도 이상하고, 짧은 시기에 많은 소설을 발표한 것도 대단하다. 우리국문학사에 차지하는 나도향은 현진건, 박종화 등과 나란히 하는 문학가이다. 청춘은 영화로도 발표되었고, 소설속의 유일복, 양순, 정희 등과 3각관계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행동들은 무섭고 절박한 사건이다. 마지막 우연히 절에서 만난 욱일과 정희의 대화에서 정희가 욱일보고 아내라고 말해달라는 요구를 뿌리치는 장면이 생각난다. 은행원인 유일복은 부모들이 정해준 배필 정희를 싫어하고 하숙집 주인 양순을 사랑했다. 유일복의 사망으로 3사람의 사랑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마는 소설이 청춘의 줄거리다.



봉정사와 등산로


   봉정사 일주문-일주문 앞 10대의 차가 주차가능. 조금아래도 10대주차가능한 공간. 매표소 앞에는 4대 정도 주차가능. 정 앞에는 차례로 3군데 주차가능한 곳이 존재



  신라고찰 봉정사











  극락전 옆 모습


  만세루에 앉아 있으면 자연의 자동풍기가 작동한다.








  유명한 봉정사 극락전







여기서 부터는 학봉 종택 사진과 핫봉 기념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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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후로 학봉선생이 끼친 국가의 위기 시 그분의 영향은 대단하다.

여기 사진까지 학봉선생관련 사진

 용궁에서 식사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