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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때 문신 장단대감(오목대감,오천대감)이종성의 일화

문장대 2017. 5. 21. 18:35

 이종성(李宗城.1692.숙종 18∼1759.영조 35)

   조선 영조 때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고(子固), 호는 오천(梧川). 시호는 효강(孝剛), 뒤에 문충(文忠)으로 개시(改諡)되었다. 항복(恒福)5세손이며, 좌의정 태좌(台佐)의 아들. 어려서부터 성리학(性理學)에 힘을 기울엿으며, 1711(숙종 37)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746(영조 23) 문과에 급제, 삼사(三司)를 거쳐 홍문관 전한(典翰)으로 국가 재정을 충족케 하여 삼남(三南)의 인심을 수습하는 것이 서북 변경을 튼튼케 하는 대책이라고 진언했다.

   왕에게 가납(嘉納)되어 관서암행어사(關西暗行御史)로 내려가 군제를 바로잡고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여 민심을 수습했다. 부제학(副提學)이 되어 외국의 통화(通貨)를 금하도록 주청했으며, 1752(영조 28) 좌의정이 되고, 이어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적당(賊黨) 김상로(金尙魯)ㆍ이인좌(李麟佐)의 간계로 영의정을 그만두었으나, 1757(영조 33) 내의원(內醫院) 봉상시도제조(奉常寺都提調)가 되고 그 해 인원대비(仁元大妃)의 상() 때 의례의9(疑禮儀九條)와 종묘ㆍ혼전(魂殿)의 예의7(禮儀七條)를 써 올려 이를 시행케 하였다.

   그 후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고, 한마음으로 동궁(東宮)을 보호하여 대신 유척기(兪拓基)ㆍ이천보(李天輔)와 더불어 합심하매,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적당들이 간계를 부리지 못했다. - 이홍직 : <국사대사전>(백만사.1975)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고(子固), 호는 오천(梧川). 시호는 효강(孝剛), 뒤에 문충(文忠)으로 개시(改諡)되었다. 항복(恒福)5세손이며, 시술(時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필(世弼)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태좌(台佐)이며, 어머니는 홍득우(洪得禹)의 딸이다.

   1711(숙종 37) 진사가 되고, 1727(영조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3일 만에 예문관설서가 되었다. 이듬 해 경연(經筵)의 전경(典經)으로 시독관 박문수(朴文秀)와 함께 붕당 200년의 폐를 논하였다. 그 해 경상도암행어사가 되어 민폐를 일소했으며, 이인좌(李麟佐)의 출가한 자매가 문경에 갇혀 있음을 보고 부당함을 상소해 석방하게 하였다.

   1733년 승지·대사간·이조참의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고, 이듬 해 홍문관부제학이 되어 양역(良役)의 폐를 상소하였다. 1735년 다시 이조참의가 되어 화폐 사용의 편리함을 논하고, 이듬 해 탕평책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으나 다시 기용되어 경기도관찰사·동지의금부사가 되었다.

   1738년 이조참판, 1741년 부사직, 1742년 충청도관찰사, 1744년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이어 예조판서ㆍ형조판서ㆍ대사헌ㆍ개성부유수, 1749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ㆍ우빈객(右賓客), 1752년 좌의정에 이어 영의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 해 세자의 처벌에 적극적이던 김상로(金尙魯) 등의 간계로 영의정을 사직하였다. 1753년 판중추부사을 거쳐 1757년 내의원봉상시도제조(內醫院奉常寺都提調) 때 인원대비(仁元大妃 : 숙종계비 김씨)의 상을 당해 의례의구조(疑禮儀九條)와 종묘 혼전(魂殿)의 예의칠조를 올려 이를 시행하게 하였다. 1758년 영중추부사가 되어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잘 보살폈다. 장조(莊祖)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오천집(梧川)>

 


일화 1-이종성(李宗城)의 일화 (원수 유척기를 도운 일화)


   유척기(兪拓基)는 숙종 17(1691)에 태어나 숙종 40년 증광문과 병과급제 검렬, 정언을 거쳐 이조참의, 도승지, 양주목사, 함경, 평안도관찰사,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이어 1739년 우의정, 1758년 영의정이 되었고 1760년 영중추부사, 봉조하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 있던 당대 명필이며 유명한 재상으로 영조 43년에 죽으니 문익(文翼)의 시호를 받은 사람이다.

   정언으로 있을 때 경종 1(1721) 세제(世弟)영조를 책립하자 책봉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숙종 37(1711) 사마사를 거쳐 장단 오목이(장단군 군내면 읍내리)에 거주하면서 공부만을 하고 있던 이종성(李宗城)의 집 근처에 이르러 고개를 넘으려 하였으나 7일 동안을 가도 그 자리를 맴돌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 연유를 몰라 곰곰이 생각 끝에 동리사람에게 이 지방에 명인을 물으니 백사 이항복의 5대손이신 이종성(후 오천대신)이란 분이 사는 게 이분은 지략과 도량이 넓으며 장래의 성쇠와 길흉을 점치는 신출귀몰한 유명한 재주를 가졌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급히 찾아가서 사죄를 하고 자초지정을 간청하니,

   그대 공이 청나라에 가게 되면 천자께서 쌀 1,000석을 보내라고 할 것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수년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말을 하라.

는 부탁을 하려고 그리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하직을 하고 떠나가는데 웬일인지 순식간에 청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착하여 영조(英祖)책봉에 주청드리는 자리에서 천자께서는 이종성이 말한 대로 과연 1,000석을 보내줄 것을 하명하자 우리나라의 곤궁한 실정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상세히 상주하니 고개만을 끄덕이니 할 수 없어하며 요행이 사면하게 되어 무사히 돌아오는 길에 이종성을 예방 치하를 드린 후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한다.

   이후 이 고개를 가칠일고개(加七日嶺)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맑고 맑은 오목내(梧川)가 흐르고 있어 이종성은 오천대신으로 불려졌다. 오천대신 이종성에 얽힌 일화는 많다. 이종성이 영의정을 거쳐 영중추부사가 되어 낙향 낚시와 시희로 소일을 하던 중 집안이 가난해 말을 타지 못하고 단신이 걸어서 황해도 봉산고을 사또로 부임차 이 지역을 지나던 김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목내를 건너서 건너가려할 때 건너쪽 언덕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노인이 있어,

   여보 영감

   미안하지만 나를 업어 강을 건너줄 수 있겠는가?

하고 간청하니 서슴지 않고 하며 발을 걷어붙이고 장등이에 업고 개울을 건너가는데 반쯤 가다가 김사또가 하는 말이,

   이 근처 오천대신이 살고 계시다는데 알고 있느냐

,

   무엇으로 소일을 하고 계시느냐

고 물으니,

   , 그분은 낚시를 하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원천이나 하고 지낸다.

하니 깜짝 놀라며 기절초풍 개울 한가운데로 자빠졌다 한다. 이리하여 오천대신은 집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갈아입히게 하고 깡보리밥을 같이 하면서 황해도 봉산은 인심이 좋은 고장이니 아무쪼록 선정을 베풀어야 된다는 간곡한 부탁을 하니 대감의 말씀에 한 치라도 소홀함이 없이 하겠다면서 공손히 하직 3년 동안 선정을 베풀었다.


[출처] 조선 문신 이종성(李宗城)|작성자 재봉틀


일화2-사또의 보리밥 타령

겸손에 관한 실화 한 토막을 보자. 조선 영조 때 경기도 장단의 오목이라는 동네에 이종성이라는 은퇴한 정승이 살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 “오목 이 정승”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매일 강가에 나가 낚시를 하면서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가 어린 하인을 데리고 낚시를 하다 시장기를 느껴 근처 주막에 방을 잡고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고을 신관 사또의 행차가 그 주막에 몰려왔다. 주막에 방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또는 부득불 오목 이 정승이 식사하는 방으로 들어왔다. 신관 사또가 거만하게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아랫목에 앉다 보니 문득 방구석에서 식사하는 촌로(村老)와 어린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한 밥상을 보니 사또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밥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사또가 물었다. “여보게 늙은이, 지금 자네가 먹는 밥은 대체 뭔가?” “보리밥이오.” “어디 나도 한번 먹어볼 수 있겠나?” “그러시지요.” 이렇게 해서 노인이 내민 보리밥 한 숟가락을 먹어본 사또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뱉어내더니 소리쳤다.

“아니, 이것이 어떻게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음식이란 말인가?” 사또가 노발대발하자 아전들은 냉큼 주모를 시켜 쌀밥과 고깃국을 대령했다. 그러는 사이에 노인과 아이는 잠자코 밖으로 나가버렸다.

바야흐로 사또가 식사를 끝낼 무렵, 이 정승 집 하인이 사또를 찾아왔다.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고관 벼슬을 지낸 어른이 부르자, 사또는 부리나케 정승 집 대문간을 뛰어넘었다. 그런데 섬돌 밑에서 큰절을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조금 전에 주막에서 보았던 바로 그 노인이 아닌가.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 신관 사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감, 아까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오목 이 정승의 추상 같은 목소리가 그의 귀를 세차게 때렸다. “그대는 전하의 교지를 받들고 부임한 관리로서 그 책임이 막중한데도 교만한 위세를 부렸으니, 그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백성들이 먹는 보리밥을 입안에 넣었다가 뱉어버리는 행위는, 도저히 목민관으로서 있을 수 없다. 그런 방자하고 사치스러운 생각으로 어찌 한 고을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장 벼슬 자리를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해서 과거에 급제하여 청운의 뜻을 품고 장단 고을에 부임했던 신관 사또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낙향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자신이 귀하게 되자 겸양하지 못하고 교만함을 드러냄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였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지위가 올라가고 학문이 깊어갈수록 더욱 겸손하게 마음을 낮추고 성실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조선 시대에는 벼슬이 정3품인 당상관에 이르면 낮은 가마인 평교자를 타도록 법으로 정해 두기까지 했다.

클린턴 버나드는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은 남들을 조종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조종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들은 누군가가 자기보다 낮은 자들을 기념하여 탑을 세우겠다고 주장해도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도 당대 과학자들 중에 가장 위대하다고 알려졌지만,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겸손했다고 한다.

위대함이란 조심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이 한 일을 자기 입으로 떠벌리지 않는 것이다(참고자료: 이상각이 지은 <마음이 여유로우면 모든 일이 쉬워진다>). 교만과 아집의 샘물을 마신 사람은 자기 삶의 발자취에 오점을 남기기 쉽고, 자기의 공든 탑을 자기 손으로 훼손하게 된다. 겸손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김형태 칼럼에서 퍼옴)


일화 3 -장단부사의 혜안

파주시 장단은 장단 콩으로도  유명하지만  장단대감의 출생지로 많은 일화가 있다.

   

사도세자를 살리려고 엄청 노력한 장단대감은 시파벽파의 다툼과 여러가지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장단으로 내려가던 중 영조임금의 총애를 받는 문숙의가 가짜 임신을 하고 그 가짜아들을 후계자로 만들 엄청난 흉계를 목숨을 걸고 막은 정승이다. 이로서 정조가 임금으로 등극할 계기를 만든 분이다. 김한구의 딸 정순왕후도 임신을 하지않고 정조가 임금이 되도록 노력한 거룩한 중전이다.

영종(영조)대왕이 만년에 정순왕후로부터 후사를 이으려고임신에 도움이 되는 보약을 정순왕후에게 자주 주었지만 안먹고 버렸다. 간특한 문숙의는 자기집안의 안들을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 속이려다 이를 알아차린 장단대감의 기지로 엄청난 사건을 미리막았다. 이종성 대감은 고향으로 갈려다 궁중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매일 한강에서 낚시하다가 벼슬을 못해 한강물에 빠져 죽으려는 청년 무부를 살려주고 자기의 서녀 산홍이를 결혼시키고 사위를 삼았으며 그 청년을 창경원 홍화문 수문장을 시켜 문숙의의 가짜 아들을 음식이라고 속이고 들어오는 궁중 무수리와 하인을 제압하고 칼로 음식을 절반짜르니 2-3일되는 아기였다. 이후 문숙의는 유산되었다고 소문났고, 궁중은 발칵뒤집어 졌다. 문숙의는 이를 무마하려고 들었고 그 청년 수문장은 죽었다는 말도있고, 승승장구했다고도 한다. 그 청년은 경상도 청년이지만 경상도 어딘지는 모른다. ( 한국사 이야기 독후감) 정조는 갖은 고초끝에 임금으로 등극했으나 장단대감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나라는 문씨 나라가 되었다. 정조는 너무감사해 나중에 장단대감에 시를 바쳤다.


垂釣江上 所須河人
(수조 강상 소수하인)

용산강가에 낚시 드리울 때

기다린 사람 누구였더뇨

五月江上 爲誰遲遲
(오월강상 위수지지
)

오월강가에 누구를 위하여
지루하게 기다렸던가

-한국사이야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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