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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도리사 입구 말리골 미나리- 도개 낙산리 고분군- 전모례 가정(개인 가정집우물)

문장대 2017. 2. 6. 21:12

1. 여행지 : 해평도리사 입구 말리골 미나리- 도개 낙산리 고분군- 전모례 가정(개인 가정집우물)

2. 여행일 : 2017년 2월 5일

3. 여행인 : 문장대 부부

4. 기타사항 : 신라 불교 발상지(구미시 도개면 도개1리 전모례 가정)를 몇년만에 재탐방 하여 천년전 유적을 관람

 

- 여행기-

  아침부터 컴에 몰두하여 붙여있는데 대해 건강이 우려되는지 집사람이 해평 도리사 입구에 철이른 미나리를 사러 가자고 한다. 요새는 미나리도 온실에서 청정수로 재배하여 건강채소로 각광 받는다. 아직 2월초순인데 2달 일찍청청 미나리를 재배하여 팔고 있는데 1단에 1만원에 주중에 팔고 있으며, 주말에는 팔 미나리가 모자란다. 이유는 미나리밭에서 낫으로 베어내어 다듬고 가지런히 추려내는 일도 힘들거니와 요새는 현지에서 돼지고기와 같이 쌈을 싸서 먹는다. 돼지고기와 미나리는 궁합이 맞아 이런 광경은 티브이에 자주 방영된다.  작년에 대구 갔다가 오는길에 이곳에서 미나리3단을 구입하여 먹고 친지에게 선물도 한 바 있다. 올해도 향기나는 미나리를 사려고 상주시내에서 30-40분의 거리인 해평면 못가서 신라고찰 도리사 입구 말구리에서 팔고 있다고 소문이 났다. 임시로 비닐 천막을 치고 영업을 한다.  하지만 일요일이라 엄청난 손님들이 가건물에서 돼지삼겹살을 미나리와 함께 먹고있다. 자연적으로 미나리가 품절되어 고기를 구워먹지 않는 한 살 수 없었다.

 

  다소 실망을 한채 후일 구입을 생각하며 주변관광을 했다. 냉산 밑에 도리사는 몇번 관광하여 포기하고 1키로 상주쪽으로 가니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고분군이 250기 정도 있다. 아마도 상주가 천년고도인지라 상주의 유명한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추측해본다. 길양쪽으로 산재된 무덤 앞에는 아리비아 숫자로 새긴 팻말이 거의 200개 정도 차례로 세워져 있다. 이어 근방 낙산리는 엄청 큰 마을로 동네에 초등학교가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끝에는 낙산리 삼층 석탑이 있다.

 

  이어서 상주쪽으로 가다보면 일선교 휴게소 가기전 500미터에 의구총이 있으며 안동댐의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어 이곳으로 이사온 안동시 임동 수곡 사람들이 사는  문화마을이 있다. 이름있는 고가도 그대로 옮겨와 동네 전체가 양반마을 같은 기와집 마을이다. 이들은 마을앞 낙동강을 보면서 안동쪽에서 내려오는 물을 보면서 고향마을을 생각하고 살 것 같다.  안동 풍산 하회마을, 영덕 영해 괴시리전통 마을 같이 멋지다.

 

  이어서 2키로 정도 가면 도개면 도개리 전모례 가정이 있는 도개1리 마을이 있다.  신라 불교를 도입 개척한 아도화상이 전모례라는 부잣집에서 살면서 불교의 전래를 꾀하였으며, 신라 눌지왕 묵호자가 불교를 전파한 이래 법흥왕 14년 이차돈이 20여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희생으로 신라 불교가 더욱 번창 하도록 한 바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전래는 다음과 같다.

  가. 고구려 - 17대왕 소수림왕2년 서기 372년 6월  중국전진의 왕 부견이 중 "순도"를 통하여 불상과 불교 자료를 가지고 와서 왕족부터 평민으로 전래함.

  나. 백제 - 15대 침류왕 1년 중국 동진의 스님 마라난타에 의해 해상으로 전파

  다. 신라 - 신라 눌지왕때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선산지역으로 전래하고 이차돈의 순교와 소지왕때 아도화상이 성덕공주의 병을 법력으로 치료하여 인정받음. 당시 신라는 토속신앙이 원체강해 불교의 전파가 힘들었으나 이차돈이 희생한 후 차츰 번성했다함.

  이곳 전모례 가정이 있는 도개리는 신라불교의 발상지이다. 이 멋지고 성스러우며 역사와 전통있는 도개면 도개1리를 적극 소개하고 싶습니다. 구미에서 가는것보다 상주에서 대구쪽으로 산업도로를 타고 가다가 도개면에 내려 도개1리로 가면됩니다. 저모례 가정은 신라시대의 이지역 부자의 이름이며 가정은 개인집 우물이다. 이 우물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근거로 인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직접보면 그 냥 동네 우물같다. 이 마을에는 조선 세종-성종때의 문신이며 문장가 홍응(좌의정 역임)의 사당이 있다. 문종 1년에 증광시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홍은 정승은 황희 정승과 같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은 분으로 그부친은 한성판윤 홍심이고 어머니는 이조참판 딸이다. 명문중의 명문인 이분의 무덤은 예상외로 경기도 구리시 구리경찰서 1키로 이내 근방 산에 있다. 주변엔 명빈 묘역과 역대벼슬한 조상 들의 집안 묘역인데 무덤들이 방치되어 무너질 듯하다. 이분은 남양이 본관이니  양반인 남양 홍씨들은 관심 관리 바랍니다.


 

이곳은 상주서-대구가는 산업도로나 구길을 따라가면 도개면이나 해평면이 나타나는데 이정표에 도리사가 있으면 그곳 구경하고 근방 고분군, 아도화상 살던 전모레 가정이 있는 도개1리로 가면 됩니다. 사진 올려봅니다.

 

              신라, 가야시대 고분으로 추정됨

 

 

 

            경주에 있는 고분과 거의 비슷하다. 창녕과 고령에도 고분이 존재

 

 

 

 

 

             주차장 크기는 10대정도 주차하지만 도로변에 10대주차가능

 

 

 

 

 

   이름있는 고택을 그대로 옮겨와 고향의 정을 듬뿍 안고 있다. 전통마을을 방불캐한는 새로 조성된 마을

 

            아도화상이 살던 동네-아도화상은 중국 위나라와 고구려를 부모로 둔 고승인데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음

 

 

 

 

 

 

 

               부친 아굴마- 모친 고도녕의 이름을 따서 아도화상임

 

 

 

 

 

             동네 담벼락에 불교 벽화가 많이 그려져 마치 이동네는 극락세계

 

 

 

 


 

이 우물이 유명하게 전해오는 모례가정의 우물- 전모례가정

 

 

                   묵호자와  아도화상이 모두 이집에서 살았음-불교박해를 피하며 또 부흥을 위해 노력한 곳인데 우물이 유일한 역사적 증거

 

 

 

                    천년 유적 우물 앞에서 찍어봅니다.-향나무가 멋집니다.

 

 

 

 

 

                     우물안은 돌로 채워져 있는데 동네 우물 같으며 주민들이  식수로 애용한같음

 

                  신라불교유적초전지 박물관인데--무료로 관람

 

 

 

 

 

 

 

 

 

 

 

 

 

 

 

                      불교의전래가 액자에 보간되어 설명됨--사진이 흐림니다

 

 

 

 

 

 

 

 

 

 

 

 

 

 

 

                        법당이라고 간판이

 

 

  동네 골목 곳곳 벽에 불교그림으로 장식

 

 

 

 

 

 

 

 

 

 

 

 

 

  주차장이 승용차 30대 정도크기

 

           모례교 건너가기전 조선 세종때 유명한 문신 홍응의 부조묘 사당이  멋지게 보존되고 사당문은 열려있음- 남양 홍씨이고 묘역은 경기도 구리시 교문2리 구리경찰서 근방 강변 앞 산에 기적묘로 존재하며 주변엔 명빈 묘가 존재함

 

 

 

 

 

   부조묘에는 축문이 의자에 있고 신위가 가려져 있습

 

                  부조묘를 관리하는 민간집으로 모원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