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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목사 손중돈 선생님-조선시대

문장대 2022. 8. 2. 23:35

상주는 신라시대부터 상당히 큰 고을로서 수많은 목민관이 부임하여 고을을 다스렸다. 그중 고려시대 안향, 조선시대 신잠(신숙주의 증손), 손중돈 등이 선정을 배풀어 그분들의 유적과 당시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유명한 이만부 선생님과 신잠 선생님의 업적은 본 불로그를 통하여 앞서 그분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올렸다. 오늘은 조선 세조시부터 중종때까지 사셨던 우재 손중돈 선생님에 대한 글을 올리고자 한다.

 

손중돈 선생님은 경주 손씨이며 중종 반정후 상주 목사를 역임하여 선정을 배풀고 이후 조선의 여러도의 관찰사와 판서, 도성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한 조선의 문신이다.출생과 사망은1463년(세조 9) ~ 1529년(중종 24) 우재 손중돈 선생님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대발(大發) · 태발(泰發), 호는 우재(愚齋)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봉호는 월천군(月川君), 시호는 경렬(景烈) · 경절(景節)이다. 부친은 이조참판을 지낸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이며,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2년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고 진사가 되었으며, 1489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봉교를 거쳐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였다. 1497년 양산군수 · 성균관 사예 · 사복시정으로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하였다.

1506년 중종반정 후에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치적을 올리고, 1509년에는 표리(表裡) 1습(襲)을 하사받고 좌승지로 승진하였다. 이어 공조 · 예조참판을 역임하다가 1517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공조판서 · 이조판서 · 세자시강원빈객을 지낸 후 도승지를 세 번, 대사간을 네 번 지냈으며,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 ·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 청백리에 뽑혔다.

저서로는 『우재집(愚齋集)』이 있다. 경주의 동강서원(東江書院), 상주(현재는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 단밀 초등근방)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제향되었다. 초서에 능하여 연면체를 썼으며 유려한 필치에 강한 골기가 있다. 근래는 상주 사벌면 삼덕리에 생사당을 후손과 유지들이 건립하였다.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있을때 경주에서 재물을 가져와 구휼한 것은 유명하다. 따라서 현재 상주 박물관 앞 뜰에는 손중돈 선정비가 있다. 경주 양동마을이 고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손중돈 [孫仲暾]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

 

1506년(중종 1)에 손중돈(孫仲暾)이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는데, 백성들이 진정으로 다시 연임이 되어 선정을 펴다가 승지로 영전되어 간 뒤에 백성들은 그의 공적을 못잊어 1509년(중종 4)에 생사당(生祠堂)을 지었다. 그 후 1592년 (선조 25) 때 병화로 불타 없어진 것을 지방의 유림들이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1656년(효종 7)에 다시 경현사(景賢祠)를 개설하여 고려 말 전라도안렴사로 선정을 베풀고 고려조를 위하여 절의를 지켰으며, 효자로 조정에까지 알려진 신우(申祐)를 주벽으로 하고 손중돈을 함께 배향하였다. 이때에 서원의 이름도 ‘속수(涑水)’로 개칭하였다. 1703년(영조 6)에는 김우굉(金宇宏)과 조정(趙靖)이 추향되고 1826년(순조26)에는 조익(趙翊)도 추향되었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매판소만 남아 있다가 1971년 3월에 세 문중의 후손인 조성학, 신기성, 김영해 등이 주역이 되어 지방 유림과 유지들의 협력으로 속수명륜당(涑水明倫堂)을 중건하고, 1989년에는 경현사(景賢祠)를 복원하게 되었다. 1971년에 세문중의 후손들이 주역이 되어서 속수명륜당과 사당을 세웠다. 1983년 봄부터 향사를 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속수서원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1463(세조 9)-1529(중종 24).조선 중기의 문신. 공조판서,이조판서,세자시강원빈객을 지낸 뒤 경상도,전라도,충청도,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영정은 견본채색으로 35.1x84.2cm.국립중앙박물관소장.

[네이버 지식백과] 손중돈 [孫仲暾]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경주 양동 마을의 관가정은 손중돈 선생님이 살던곳이다.

 

조선 중종때 청백리로 선정된 우재 손중돈 선생님의 저서 우재 선생실기 

 

 

동강서원은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에 있는 조선시대 서원입니다. 조선 초기때의 학자인 손중돈 선생의 학문적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출처] 한가로운 오후, 동강서원에서|작성자 원봉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손중돈(孫仲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훼철 직후인 1870년에 설단(設壇)하여 단향(壇享)으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925년에 활원재(活源齋), 1960년에 묘우(廟宇)·강당 등을 복원하였다.
1980년에 경상북도에서 수복(修復)하였으며,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덕사(崇德祠), 신문(神門), 5칸의 순교당(諄敎堂), 5칸의 활원재, 유도문(由道門)·전사청(典祀廳), 4칸의 서고, 9칸의 포사(庖舍), 협문(夾門) 등이 있다.
묘우인 숭덕사에는 손중돈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순교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동쪽은 궁리재(窮理齋), 서쪽은 진성재(盡性齋)라 현액되어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활원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현재는 서원의 큰 행사나 향례 때 사용되고 있다. 포사는 향사 때 제물을 장만하여 두거나 고자(庫子)가 거처하던 곳이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보관하는 곳이다.
매년 2월 하정(下丁)주 01)과 9월 하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중종이 하사한 서적과 역대 군·시·도상 2권, 김생(金生) 등의 서법첩, 교지(敎旨) 300여 매가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8000여 평, 임야 10정보 등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동강서원(東江書院))]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 단밀초등 근방에 존재하는 속수서원 모습

 

 

 상주시 경천대 인근의 사벌면 삼덕리에 복원된 손중돈 선생님 생사당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자명로321번길 88-57 (달전리) 우재 선생님 묘역 근방의 하학재는 손중돈 선생님의 재실이다. 경북 문화재로 지정

 

 

 경북 상주 박물관 야외 공원에 존재하는 손중돈 선생님 선정비 

 

양동마을이 고향이고 김종직의 문인이며 이언적 선생님이 외조카이다. 이언적 선생님은 이곳 외가에 와서 손중돈 선생님에게 많은 배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