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동국통감

신라 45대 신무왕

문장대 2025. 12. 19. 16:16

자료출처 : 네이브지식백과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신무왕(神武王)

삼국사기 제10권 신라본기 제10(三國史記 卷第十 新羅本紀 第十)
신라 839년 ~ 839년
 

신무왕(神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우징(祐徵)이다. 원성대왕(元聖大王)의 손자인 상대등 균정(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 동생이다. 예징(禮徵) 등이 궁중을 깨끗이 숙청하고, 예절을 갖추어 그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의 조부인 이찬 예영(禮英)[혹은 효진(孝眞)이라고도 한다.]을 혜강대왕(惠康大王)으로 삼아 추존하고, 아버지를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삼고, 어머니 박씨 진교부인(眞矯夫人)을 헌목태후(憲穆太后)로 삼고, 아들 경응(慶膺)을 태자로 삼았으며, 청해진 대사 궁복(弓福)을 감의군사(感義軍使)로 삼고 식읍 2천 호를 주어 봉하였다.

이홍(利弘)은 두려워 처자식을 버리고 산림으로 도망하였으나, 임금이 기병을 보내 쫓아가서 잡아 죽였다.

가을 7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치청절도사(淄靑節度使)에게 노비를 주었다. 황제가 이를 듣고 먼 곳에서 온 사람이라고 불쌍히 여겨 조칙을 내려 노비들을 귀국하게 하였다.

임금이 병으로 누웠는데, 꿈에 이홍이 활을 쏘아 임금의 등을 맞혔다. 임금이 잠에서 깨어보니 등에 종기가 나 있었다.

이달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 지냈다.

神武王立 諱祐徵 元聖大王孫均貞上大等之子 僖康王之從弟也 禮徵等旣淸宮禁 備禮迎之 卽位 追尊祖伊飡禮英[一云孝眞]爲惠康大王 考爲成德大王 母朴氏眞矯夫人爲憲穆太后 立子慶膺爲太子 封淸海鎭大使弓福爲感義軍使 食實封二千戶 利弘懼 棄妻子 遁山林 王遣騎士 追捕殺之 秋七月 遣使如唐 遺淄靑節度使奴婢 帝聞之矜遠人 詔令歸國 王寢疾 夢利弘射中背 旣寤 瘡發背 至是月二十三日 薨 諡曰神武 葬于弟兄山西北

사관이 논평한다.

구양자(歐陽子)가 말하기를, “노(魯)나라 환공(桓公)은 은공(隱公)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요, 선공(宣公)은 자적(子赤)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이며, 정(鄭)나라 여공(厲公)은 세자 홀(忽)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요, 위(衛)나라 공손표(公孫剽)는 자기 임금 간(衎)을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자이다. 공자가 『춘추(春秋)』에 모두 그들이 임금이 된 사실을 빠뜨리지 않고 각각 사실대로 전한 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네 왕의 죄는 사람들의 귀를 가릴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사람들이 악한 행동이 거의 없어지기를 바란 것이다.”고 하였다. 신라의 언승(彦昇)은 애장왕(哀莊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김명(金明)은 희강왕(僖康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우징은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지금 이러한 사실을 모두 기록하는 것도 또한 『춘추』의 뜻과 같은 것이다.

論曰 歐陽子之論曰 魯桓公 弑隱公而自立者 宣公 弑子赤而自立者 鄭厲公 逐世子忽而自立者 衛公孫剽 逐其君衎而自立者 聖人於春秋 皆不絶其爲君 各傳其實 而使後世信之 則四君之罪 不可得而掩耳 則人之爲惡 庶乎其息矣 羅之彦昇 弑哀莊而卽位 金明 弑僖康而卽位 祐徵 弑閔哀而卽位 今皆書其實 亦春秋之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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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통감 원전
신라 희강왕 3년, 무오년(戊午年), 838년
신무왕
신라 신무왕 원년, 기미년(己未年), 839년
출처: 국역 동국통감
[네이버 지식백과]
신무왕 [神武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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