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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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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제10권 신라본기 제10(三國史記 卷第十 新羅本紀 第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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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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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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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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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년 ~ 8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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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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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년 ~ 8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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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강왕(僖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제융(悌隆)[혹은 제옹(悌顒)이라고도 한다.]이다. 원성대왕의 손자 이찬 헌정(憲貞)[초노(草奴)라고도 한다.]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포도부인(包道夫人)이다. 왕비는 문목부인(文穆夫人)으로, 갈문왕 충공(忠恭)의 딸이다.
처음에 흥덕왕(興德王)이 돌아가셨을 때, 왕의 사촌 동생인 균정(均貞)과 다른 사촌 동생의 아들인 제융(悌隆)이 모두 임금이 되고자 하였다. 이때 시중 김명(金明)과 아찬 이홍(利弘), 아찬 배훤백(裴萱伯) 등은 제융을 받들었고, 아찬 우징은 조카 예징(禮徵) 및 김양(金陽)과 함께 그의 아버지 균정을 받들었는데, 동시에 궁궐 안으로 들어와 서로 싸웠다. 김양은 화살에 맞아 우징 등과 함께 도망갔고, 균정은 살해되었다. 이에 따라 뒤에 제융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僖康王立 諱悌隆[一云悌顒] 元聖大王孫伊飡憲貞[一云草奴]之子也 母 包道夫人 妃 文穆夫人 葛文王忠恭之女 初 興德王之薨也 其堂弟均貞堂弟之子悌隆 皆欲爲君 於是 侍中金明阿飡利弘裴萱伯等 奉悌隆 阿飡祐徵與姪禮徵及金陽 奉其父均貞 一時 入內相戰 金陽中箭 與祐徵等逃走 均貞遇害 而後悌隆乃得卽位
2년(서기 837) 봄 정월, 사형수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임금의 아버지를 익성대왕(翌成大王), 어머니 박씨를 순성태후(順成太后)로 추봉하였다.
시중 김명을 상대등으로 삼고, 아찬 이홍을 시중으로 삼았다.
여름 4월, 당나라 문종이 숙위(宿衛)하던 왕자 김의종(金義琮)을 돌려보냈다.
아찬 우징이 자기 아버지 균정이 피살되었기 때문에 원망하는 말을 하고 다니자, 김명과 이홍 등이 그를 불편하게 여겼다.
5월, 우징은 자기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그의 처자와 함께 황산진 어귀로 달아나, 배를 타고 가서 청해진(淸海鎭) 대사 궁복(弓福)에게 의지하였다.
6월, 균정의 매제인 아찬 예징이 아찬 양순(良順)과 함께 도망하여 우징에게 투신하였다.
당나라 문종이 숙위 김충신(金忠信) 등에게 차등을 두어 비단을 하사하였다.
二年 春正月 大赦獄囚誅死已下 追封考爲翌成大王 母朴氏爲順成太后 拜侍中金明爲上大等 阿飡利弘爲侍中 夏四月 唐文宗放還宿衛王子金義琮 阿飡祐徵 以父均貞遇害 出怨言 金明利弘等不平之 五月 祐徵懼禍及 與妻子奔黃山津口 乘舟往依於淸海鎭大使弓福 六月 均貞妹壻阿飡禮徵 與阿飡良順亡投於祐徵 唐文宗賜宿衛金忠信等錦綵有差
3년(서기 838) 봄 정월, 상대등 김명과 시중 이홍 등이 병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고, 임금의 측근들을 죽였다. 임금은 자신도 온전하지 못할 것을 알고 궁중에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시호를 희강(僖康)이라 하고 소산(蘇山)에 장사 지냈다.
三年 春正月 上大等金明侍中利弘等 興兵作亂 害王左右 王知不能自全 乃縊於宮中 諡曰僖康 葬于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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