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아들로 서양의사가 된 박서양
우리나라는 독특한 의학인 한의학이 존재하였다. 한의학은 주로 침, 뜸, 진맥, 한약, 사상학을 기반으로 축적된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병든 백성을 치료하였다. 서양의학의 등장으로 한의학은 조금 밀려났지만 한의과 대학과 한의사 시험을 통하여 많은 한의사가 배출되어 전국 곳곳에서 개업하여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 시켰다. 특히 한약은 부작용이 적고 자연적인 치료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전국 곳곳에 한의과 대학 6년제가 설립되어 많은 한의사를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구한말에 서양의학이 도입되어 눈부신 발전을 하여 우리나라에는 대학마다 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수 많은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전국에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개인병원이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말 고종시대에 선교사로 들어온 서양의들이 왕의 주치의가 되고 일반백성도 치료하며 선교활동을 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구한말 당시 한학만 발달되어 서양의학이 일부 선교사들이 왕가의 병을 치료하면서 평등의 정신으로 백성들을 치료하기도 했다. 이때 무어목사(모삼열 목사)과 예수학당을 설립하여 양반들이 교회를 다니고 장로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천주교 처럼 박해를 받지 않은것은 그들의 의술이 왕과 왕가의 가족들의 병을 잘 치료해 주었기 때문이다.
무어의 소개로 당시 백정인 박가(후에 박성춘으로 득명)가 전염병에 이환되어 사경을 헤매일때 그의아들 박봉출(후에 박서양 으로 개명)이 교회목사 무어목사에게 사정을 하여 무어목사는 왕의 의사인 캐나다 선교사이자 서양의사인 에비슨을 소개하여 치료하도록 했다. 백정 박가를소개받은 에베슨은 현 관철동의 백정 박가집을 찾아 다니며 치료해 주었다. 당시 백정은 침을 맞을 수 도없는 가장천한 백정이었다. 백정은 호적은 커녕 인구조사에도 제외되어 짐승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백정 박가는 백정의 딸과 간신하 결혼하여 박봉출(박서양)을 낳았는데 총명하고 성실하였다. 그러나 아들도 백정직업을 해야하는 기막힌 현실이었다. 그러나 용기가 있는 백정 박가는 아들 박성출을 에비슨 의사의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험한 일과 허드랫일을 열성적으로 하는 것을 본 에비슨은 박성출에게 서양의학을 가르켰다. 제중원인 세브란스1회로 입학하여 서양의학을 배웠고 나중에 의사시험에 합격하도록 가르켰다. 그리고 고종왕에게 백정 등 천만을 일반인과 같이 면천시키도록 했다. 따라서 박성출은 박서양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서양의사가 되었다. 서재필 박사가 미국에서 공부한 최초의 의사인데 박서양은 당시 국내애서 배출된 최초의 서양의사이다. 그리고 기막힌 백정의 신분을 극복하고 서양의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제중원에서 의사를 배출하는 학과가 개설되어 교수로서 활동하였다.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일선에서 후배의사를 배출하였다. 후에는 중국 간도지방에가서 구세의원을 개업하고 독립운동을 하는 군의로서 역할을 했다. 천민에서 1등 국민으로 변모한 박서양은 현재 세브란스 병원의 초기 교수로 활동했으니 이는 신의 계시인 같다.
물론 아버지 백정 박가의 자식을 위한 피나는 노력덕분이다. 그리고 또 귀한 한분은 고국 캐나다에서 출세가 보장된 의사 개업을 포기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한 에비슨 선생의 거룩한 노력덕분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의학이 발달한 것은 알렌과 언드우드, 에비슨 등 거룩한 외국인들의 헌신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어려운 학문인 병리학, 생물학, 해부학, 화학 등 영어로 된 책을 공부하고 의학과묵을 이수하고 의사가 된 박서양!! 박서양의 아버지 박성춘은 만고의 위인이다. 특히 박성춘은 1898년 4월 독립협회의와 정부의 도음으로 외세침입을 반대하는 만민공동회(관민공동회)의 연사로서 전국으로 활동하였다. 교회 장로로서 활동도 하여 천민의 신분에서 헤어났으나 보수적인 국민들은 박성춘을 백정출신이라고 경계하고 싫어하였다. 오늘날 도축업은 중요한 사업으로 변했고, 그로인한 우리나라의 수 많은 식당들은 멋진 직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박성춘은 한국사 시험에 간혹 출제되는 이름이고 박서양은 사극이나 티브이 연속극에 자주 등장하는 역사의 인물이다.
왕의 주치의 와 선교사로 활동한 케나다 올리버 알 에비슨은 한국의 의학 발달에 기여한 은인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1학년때 교과서에 올리버 알 에비슨이 사망으로 장례식에서 어느분이 에비슨의 죽음에 애도하며 추모한 추도사의 글이 있었다.
당시는 올리버가 누구인지 몰랐다.
당시 서울시민이 25만인데 많은 군중들이 집합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연사로 백정출신 박성춘의 모습-백정 박가로 불리다가 에비슨의 덕으로 천민취급이 폐지되어 이름을 개명-새로운 봄을 맞았다는 박성춘
서양의사를 배출한 제중원 의학교 제1회 졸업식-현 연세대학교 전신-우측 둥근원안은 박서양(태양이 서서이 피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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