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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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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제11권 신라본기 제11(三國史記 卷第十一 新羅本紀 第十一)
신라
875년 ~ 886년
875년 ~ 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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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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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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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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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憲康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정(晸)이며, 경문왕(景文王)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문의왕후(文懿王后)이며, 왕비는 의명부인(懿明夫人)이다. 임금은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책보기를 좋아하였는데, 눈으로 한 번 보면 입으로 모두 외웠다. 왕위에 오르면서 이찬 위홍(魏弘)을 상대등으로 삼고, 대아찬 예겸(乂謙)을 시중으로 삼고, 서울과 지방에 있는 사형수 이하의 죄수들을 크게 사면하였다.
憲康王立 諱晸 景文王之太子 母 文懿王后 妃 懿明夫人 王性聰敏 愛看書 目所一覽 皆誦於口 卽位 拜伊飡魏弘爲上大等 大阿飡乂謙爲侍中 大赦內外殊死已下
2년(서기 876) 봄 2월, 황룡사(皇龍寺)에서 모든 스님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백고좌(百高座)1)를 열어 불경을 강론하였다. 임금이 직접 행차하여 들었다.
가을 7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二年 春二月 皇龍寺齋僧 設百高座講經 王親幸聽之 秋七月 遣使入唐貢方物
3년(서기 877) 봄 정월, 우리(고려) 태조대왕(왕건)이 송악군(松岳郡)에서 태어났다.
三年 春正月 我太祖大王生於松岳郡
4년(서기 878) 여름 4월, 당나라 희종(僖宗)이 사신을 보내 왕을 사지절개부의동삼사검교태위대도독계림주제군사신라왕(使持節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大都督雞林州諸軍事新羅王)으로 책봉하였다.
가을 7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려다가,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중지하였다.
8월, 일본국 사신이 오니, 임금이 조원전(朝元殿)에서 접견하였다.
四年 夏四月 唐僖宗降使 冊封王爲使持節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大都督雞林州諸軍事新羅王 秋七月 遣使朝唐 聞黃巢賊起 乃止 八月 日本國使至 王引見於朝元殿
5년(서기 879) 봄 2월, 임금이 국학에 행차하여 박사 이하에게 강론을 하도록 명하였다.
3월, 임금이 나라 동쪽의 주와 군을 순행하였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사람 넷이 임금의 수레 앞에 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그들의 모습이 해괴하고 차림새가 괴이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산과 바다에 사는 정령(精靈)이라고 여겼다.[고기(古記)에는 이 사건이 왕위에 오른 원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여름 6월, 일길찬 신홍(信弘)이 반역을 일으켰기에 사형에 처하였다.
겨울 10월, 임금이 준례문(遵禮門)에 나아가 활 쏘는 것을 관람하였다.
11월, 임금이 혈성(穴城)의 들에서 사냥을 하였다.
五年 春二月 幸國學 命博士已下講論 三月 巡幸國東州郡 有不知所從來四人 詣駕前歌歌舞 形容可駭 衣巾詭異 時人謂之山海精靈[古記謂王卽位元年事] 夏六月 一吉飡信弘叛 伏誅 冬十月 御遵禮門觀射 十一月 獵穴城原
6년(서기 880) 봄 2월, 태백(太白, 금성)이 달을 침범하였다.
시중 예겸이 사직하였기에, 이찬 민공(敏恭)을 시중으로 삼았다.
가을 8월, 웅주(熊州)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진상하였다.
9월 9일, 임금이 좌우의 신하들과 월상루(月上樓)에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니, 서울에 민가가 즐비하고 노랫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임금이 시중 민공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들었는데, 지금 민간에서는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짓는다 하니 과연 그러한가?”
민공이 대답하였다.
“저도 역시 일찍이 이와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또 아뢰었다.
“임금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음양이 조화롭고 바람과 비가 순조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며, 국경이 안정되고 도시에서는 즐거워하니, 이것은 임금의 어진 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임금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것은 그대들의 도움에 힘입은 것이지 나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
六年 春二月 太白犯月 侍中乂謙退 伊飡敏恭爲侍中 秋八月 熊州進嘉禾 九月九日 王與左右 登月上樓 四望 京都民屋相屬 歌吹連聲 王顧謂侍中敏恭曰 孤聞今之民間 覆屋以瓦不以茅 炊飯以炭不以薪 有是耶 敏恭對曰 臣亦嘗聞之如此 因奏曰 上卽位以來 陰陽和 風雨順 歲有年 民足食 邊境謐靜 市井歡娛 此 聖德之所致也 王欣然曰 此 卿等輔佐之力也 朕何德焉
7년(서기 881) 봄 3월, 임금이 임해전(臨海殿)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술기운에 감흥이 오르자 왕은 거문고를 타고, 신하들은 각각 노래가사를 지어 올리면서 마음껏 즐기다가 헤어졌다.
七年 春三月 燕群臣於臨海殿 酒酣 上鼓琴 左右各進歌詞 極歡而罷
8년(서기 882) 여름 4월,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 황금 3백 냥과 명주(明珠) 10개를 진상하였다.
겨울 12월, 고미현(枯彌縣)의 여자가 한 번에 아들 셋을 낳았다.
八年 夏四月 日本國王遣使 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 冬十二月 枯彌縣女 一産三男
9년(서기 883) 봄 2월, 임금이 삼랑사(三郞寺)에 행차하여 문신들에게 각각 시 한 수씩을 짓도록 명하였다.
九年 春二月 王幸三郞寺 命文臣各賦詩一首
11년(서기 885) 봄 2월, 호랑이가 궁궐에 들어왔다.
3월, 최치원(致遠還)이 돌아왔다.
겨울 10월, 임자일에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황소(黃巢)의 난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였다.
十一年 春二月 虎入宮庭 三月 崔致遠還 冬十月壬子 太白晝見 遣使入唐 賀破黃巢賊
12년(서기 886) 봄, 북진(北鎭)에서 “적국 사람이 진에 들어와 나무 조각을 나무에 걸어 놓고 돌아갔다.”고 말하면서 그 나무 조각을 가져다 바쳤다. 거기에는 “보로국(寶露國)과 흑수국(黑水國)2) 사람들이 모두 신라국과 화친하고자 한다.”는 열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여름 6월, 임금이 병으로 편안하지 못하자 전국의 죄수들을 석방하고, 또 황룡사에서 백고좌를 열어 불경을 강론하였다.
가을 7월 5일,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헌강(憲康)이라 하고,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
十二年 春 北鎭奏 狄國人入鎭 以片木掛樹而歸 遂取以獻 其木書十五字云 寶露國與黑水國人 共向新羅國和通 夏六月 王不豫 赦國內獄囚 又於皇龍寺 設百高座講經 秋七月五日 薨 諡曰憲康 葬菩提寺東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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