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척 바다와 해변

장자 강의

장자 강의 :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06,07,08,09,10장

문장대 2025. 10. 20. 20:11
6장
06[장자(외편)] 第12篇 天地(천지) 06.세 가지의 근심 : 三患(삼환) (6/16) 외편 / 장자
2018. 1. 29. 12:04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 第6章
<無爲로 행하는 것은 天이다>
06.세 가지의 근심 : 三患(삼환) (06/16)

06.세 가지의 근심
<三患(삼환) : 懼(걱정거리)‧事(번거로운 일거리)‧辱(치욕)의 세 가지 근심>


堯觀乎華(요관호화)。華封人曰(화봉인왈):
「嘻(희)!聖人(성인)!請祝聖人(청축성인):使聖人壽(사성인수)。」
堯曰(요왈):「辭(사)。」
「使聖人富(사성인부)」。
堯曰(요왈):「辭(사)。」
「使聖人多男子(사성인다남자)」。
堯曰(요왈):「辭(사)。」
封人曰(봉인왈):「壽、富、多男子(수,부,다남자),人之所欲也(인지소욕야)。
女獨不欲(여독불욕),何邪(하야)?」
堯曰(요왈):
「多男子則多懼(다남자즉다구),富則多事(부즉다사),壽則多辱(수즉다욕)。
是三者(시삼자),非所以養德也(비소이양덕야),故辭(고사)。」


요(堯)임금이 화(華) 땅을 유람했는데 화 땅의 국경지기가 말했다.
“아! 성인이시여. 성인에게 축원을 드려 성인께서 오래 사시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성인께서 부유하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성인께서 사내아이를 많이 두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유하고 사내아이를 많이 두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바라는 것인데, 당신께서 유독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요가 말했다.
“사내아이를 많이 두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유하게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될 일이 많아지니 이 세 가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덕을 기르는 방법이 아니다. 그 때문에 사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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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觀乎華(요관호화) : 요가 화 땅을 유람함. 화(華)는 지명. 成玄英은 화주(華州)라 했는데 지금의 섬서(陝西) 화현(華縣)이다(方勇‧陸永品).

封人(봉인) : 국경 지역을 지키는 사람. 비슷한 예로 ≪論語≫ 〈八佾(팔일)〉편에 의봉인(儀封人)이 보인다.

請祝聖人(청축성인) : 성인에게 축원하고자 함. 祝은 축원(祝願)하다는 뜻. 화(華) 땅의 국경지기가 말로만 듣던 성인(聖人) 요(堯)를 직접 본 감격으로 성인(聖人)을 위해 축원(祝願)한다고 청(請)한 것이다.

壽富多男子(수부다남자) : 오래 사는 것, 부유한 것, 남자가 많은 것. 男子는 사내아이. 이 장에서는 壽‧富‧多男子(수.부.다남자) 하기를 사양하는 요(堯)에게 그것도 굳이 사양할 것 없이 그것이 이르게 되면 그대로 받아들여 물(物)의 자연(自然)에 따르는 무심(無心)의 처세(處世)를 할 것을 화(華)의 국경지기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內篇 〈應帝王〉편 제3장의 天根과 無名人의 대화를 방불케 한다.

人之所欲也(인지소욕야) :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임. 고대 중국인의 머릿속에 있었던 행복의 세 가지 조건.

女獨不欲(여독불욕) 何邪(하야) : 당신만 홀로 바라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女는 2인칭, 汝와 같다.

多男子則多懼(다남자즉다구) : 사내아이를 많이 두면 걱정이 많아짐. 전설에 의하면 요임금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단주였다. 성품이 오만하고 욕심이 많아서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었는데 이로 인해서 자식이 많으면 걱정이 많아진다고 한 듯하다(方勇‧陸永品).

富則多事(부즉다사) : 부유하게 되면 일이 많아짐. 계산을 하거나 도둑을 예방하는 등의 일이 많아진다는 뜻(方勇‧陸永品).

非所以養德也(비소이양덕야) : 이 세 가지는 덕을 기르는 방법이 아니다. 福永光司는 “養德의 ‘德’은 儒家的인 의미의 德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나 道家的인 무위자연의 그것(道家의 德)으로 보는 것이 보다 흥미 있을 것이다. 이 설화의 작자는 유가의 성인인 요(堯)를 無懼‧無事‧無辱(무구.무사.무욕)의 생활을 이상으로 하는 도가적 덕(德)의 이해자(理解者)로 만들어 놓고 그 이해(理解)가 겉핥기에 지나지 않음을 비판하고 순물자연(順物自然)하여 壽‧富‧多男子를 인위적으로 물리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封人曰(봉인왈):「始也我以女為聖人邪(시야아이여위성인야),今然君子也(금연군자야)。
天生萬民(천생만민),必授之職(필수지직),
多男子而授之職(다남자이수지직),則何懼之有(즉하구지유)!
富而使人分之(부이사인분지),則何事之有(즉하사지유)!
夫聖人鶉居而鷇食(부성인순거이구식),鳥行而無彰(조행이무창);
天下有道則與物皆昌(천하유도즉여물개창),
天下無道則修德就閒(천하무도즉수덕취한);
千歲厭世(천세염세),去而上僊(거이상선),
乘彼白雲(승피백운),至於帝鄉(지어제향)。
三患莫至(삼환막지),身常無殃(신상무앙),則何辱之有(즉하욕지유)!」
封人去之(봉인거지),堯隨之(요수지),曰(왈):「請問(청문)。」
封人曰(봉인왈):「退已(퇴이)!」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 여겼더니 지금 보니 그저 그런 군자이군요.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면 반드시 직책을 주기 마련이니
사내아이가 많으면 직책을 주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유하면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 없이도 산과 들의 자유를 즐기고 새 새끼가 어미가 주는 것을 받아먹듯 自然에 맡기며 살아가고 새처럼 자유로이 다니면서 흔적을 남김이 없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함께 창성하고
천하가 무도하면 덕을 닦으면서 한가로이 삽니다.
천 년을 살다가 세상에 싫증이 나면 떠나서 위로 올라 신선이 되어
저 흰 구름을 타고 상제의 고향에 이릅니다.
〈懼·事·辱의〉 세 가지 근심이 이르지 않아 몸은 늘 아무런 재앙도 없을 것이니 무슨 욕됨이 있겠습니까!”
국경지기가 떠나가자 요가 그를 따라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가르침을 요청했지만
국경지기는 “물러가시오.”라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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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也(시야) 我(아) 以女爲聖人邪(이여위성인야) :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 여겼더니만. 邪(야)는 也와 같다(王念孫).

今然君子也(금연군자야) : 지금 보니 그저 그런 군자임. 王念孫은 然자를 乃와 같다고 풀이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則과도 같은 뜻. 〈養生主〉편에서 秦失(진일)이 老聃(노담)을 두고 “처음에 나는 그가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만 지금 보니 아니다[始也吾以爲其人也 而今非也].”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王叔岷). 성인은 못 되고 그저 그런 군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실망한 말.

天生萬民(천생만민) 必授之職(필수지직) :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면 반드시 직책을 주기 마련임. 王叔岷은 萬民이 증민(烝民)으로 된 인용문을 들어 ≪詩經‧大雅≫의 烝民 시에 나오는 天生烝民을 고친 것이라고 했다.

富而使人分之則何事之有(부이사인분지즉하사지유) : 부유하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됨. 分之(분지)는 재물을 나누어 준다는 뜻. 何事之有는 무슨 일이 있겠는가의 뜻.

鶉居而鷇食(순거이구식) :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 없이도 산과 들의 自由를 즐기고 새 새끼가 어미가 주는 것을 받아먹듯 자연에 맡기며 살아감. 鶉(순)은 메추라기이고, 鶉居(순거)는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가 없이 자유롭다는 뜻. 鷇(구)食은 새끼 새가 어미가 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처럼 자연에 맡겨 작은 것에 만족한다는 뜻. 陸德明은 “순거(鶉居)는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음을 말한다[鶉居 謂无常處也].”라고 풀이했다.

鳥行而無彰(조행이무창) : 새처럼 자유로이 다니면서 흔적을 남김이 없음. 鳥行(조행)은 새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는 뜻. 彰(창)은 자취, 흔적. 成玄英은 “彰은 文의 자취이다[彰 文迹也].”라고 풀이했고, 褚伯秀는 “메추라기처럼 살아 일정함이 없고 새 새끼처럼 어미가 물어다 주는 것만 먹고 새처럼 허공을 날아서 지나가면서도 자취가 없으니 모두 무심히 자연을 따르는 뜻이다[鶉居無常 鷇仰母哺 鳥行虛空 過而無迹 皆無心自然之意].”라고 풀이했다.

天下有道(천하유도) 則與物皆昌(즉여물개창) 天下無道(천하무도) 則修德就閒(즉수덕취한) :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함께 창성하고 천하가 무도하면 덕을 닦으면서 한가로이 살아감. 就閒(취한)은 한가로운 곳으로 나아감, 곧 한가롭게 살아간다는 뜻. 王叔岷은 이 대목이 ≪論語≫ 〈泰伯〉편의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천하가 무도하면 은둔한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는 내용과 통하는 부분이라 했고, 方勇‧陸永品은 〈人間世〉편의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성인은 그것을 완성시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성인은 자신의 생명이나 지킨다[天下有道 聖人成焉 天下無道 聖人生焉].”라고 한 내용과 유사하다고 풀이했다.

去而上僊(거이상선) : 떠나가 위로 올라가 신선이 됨. 僊은 仙과 같은데, 仙으로 된 판본도 있다(王叔岷).

乘彼白雲(승피백운) 至於帝鄕(지어제향) : 저 흰 구름을 타고 상제의 고향에 이름. 帝鄕(제향)은 상제(上帝)의 고향, 천제(天帝)가 사는 낙원(樂園), 이상향(理想鄕)을 의미한다. 王叔岷은 이 문구가 ≪僞子華子≫와 ≪呂氏春秋≫에 나와 있다고 소개하고, 그것을 근거로 이 편이 전국 말기에 장자를 읽던 이들이 장자에 가탁해서 지은 것으로 추정했다.

三患(삼환) : 懼(걱정거리)‧事(번거로운 일거리)‧辱(치욕)의 세 가지 근심. 林希逸이 ‘少‧壯‧老’를, 林雲銘이 ‘病‧老‧死’를 三患으로 보는 것은 不可하다(池田知久).

身常無殃(신상무앙) 則何辱之有(즉하욕지유) : 몸이 늘 해로움이 없을 것이니 무슨 욕됨이 있겠는가. 福永光司는 이 대목에서 장자 철학의 신선사상화(神仙思想化) 경향이 뚜렷하게 간취(看取)되고 초월(超越)의 철학(哲學)으로서의 ≪莊子≫의 후차적(後次的) 전개(展開)의 한 방향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羅根澤 또한 이 대목은 진한(秦漢)시대 신선가(神仙家)의 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退已(퇴이) : 물러가시오. 已는 종결사로 矣와 같다. “물러가시오. 이 속물 천자이시여.”라고 하는 기분이 느껴진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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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外篇 -> 天地

6

堯觀乎華。華封人曰:「嘻!聖人!請祝聖人:使聖人壽。」堯曰:「辭。」「使聖人富」。堯曰:「辭。」「使聖人多男子」。堯曰:「辭。」封人曰:「壽、富、多男子,人之所欲也。女獨不欲,何邪?」堯曰:「多男子則多懼,富則多事,壽則多辱。是三者,非所以養德也,故辭。」封人曰:「始也我以女為聖人邪,今然君子也。天生萬民,必授之職,多男子而授之職,則何懼之有!富而使人分之,則何事之有!夫聖人鶉居而鷇食,鳥行而無彰;天下有道則與物皆昌,天下無道則修德就閒;千歲厭世,去而上僊,乘彼白雲,至於帝鄉。三患莫至,身常無殃,則何辱之有!」封人去之,堯隨之,曰:「請問。」封人曰:「退已!」

요(堯)임금이 화(華) 땅을 유람했는데 화 땅의 국경지기가 말했다.
“아! 성인이시여. 성인에게 축원을 드려 성인께서 오래 사시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성인께서 부유하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성인께서 사내아이를 많이 두게 하고 싶습니다.”
요가 말했다. “사양하고 싶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오래 살고 부유하고 사내아이를 많이 두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바라는 것인데, 당신께서 유독 바라지 않으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요가 말했다.
“사내아이를 많이 두면 걱정이 많아지고 부유하게 되면 일이 많아지고 오래 살면 욕될 일이 많아지니 이 세 가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덕을 기르는 방법이 아니다. 그 때문에 사양하는 것이다.”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에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 여겼더니 지금 보니 그저 그런 군자이군요. 하늘이 만백성을 낳으면 반드시 직책을 주기 마련이니 사내아이가 많으면 직책을 주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유하면 다른 사람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일정한 거처 없이도 산과 들의 자유를 즐기고 새 새끼가 어미가 주는 것을 받아먹듯 自然에 맡기며 살아가고 새처럼 자유로이 다니면서 흔적을 남김이 없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함께 창성하고 천하가 무도하면 덕을 닦으면서 한가로이 삽니다. 천 년을 살다가 세상에 싫증이 나면 떠나서 위로 올라 신선이 되어 저 흰 구름을 타고 상제의 고향에 이릅니다. 〈懼·事·辱의〉 세 가지 근심이 이르지 않아 몸은 늘 아무런 재앙도 없을 것이니 무슨 욕됨이 있겠습니까!”

국경지기가 떠나가자 요가 그를 따라가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서 가르침을 요청했지만 국경지기는 “물러가시오.”라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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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 第7章
<無爲로 행하는 것은 天이다>
07.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 진다.(07/16)

 

07.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 진다.

 


堯治天下(요치천하),伯成子高立為諸侯(백성자고립위제후)。
堯授舜(요수순),舜授禹(순수우),
伯成子高辭為諸侯而耕(백성자고사위제후이경)。
禹往見之(우왕현지),則耕在野(즉경재야)。
禹趨就下風(우추취하풍),立而問焉(입이문언),曰(왈):
「昔堯治天下(석요치천하),吾子立為諸侯(오자립위제후);
堯授舜(요수순),舜授予(순수여),
而吾子辭為諸侯而耕(이오자사위제후이경)。
敢問其故何也(감문기고하야)?」

 

요(堯)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자고(伯成子高)가 벼슬하여 제후(諸侯)가 되었다.

그러다가 요(堯)가 천자(天子)의 자리를 순(舜)에게 물려주고 또 순(舜)이 우(禹)에게 선양(禪讓)하자,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제후가 되기를 사양하고 농사를 지었다.

우(禹)가 그를 만나러 갔더니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禹)가 종종걸음으로 아래쪽으로 나아가 선 채로 이렇게 여쭈었다.

“옛날 요(堯)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당신이 벼슬하여 제후가 되었다가

요(堯)가 순(舜)에게 〈天子의 자리를〉 물려주고 순(舜)이 나에게 물려주자

당신은 제후되기를 사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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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요) : 제요 도당씨(帝堯陶唐氏)는 중국 신화 속 군주이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가운데 오제의 하나이다. 다음 대의 군주인 순(舜)과 함께 이른바 '요순'(堯舜)이라 하여 성군(聖君)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伯成子高(백성자고) : 인명. 은자(隱者)로 어떠한 인물인지 명확하지 않다. 兪樾은 백성(伯成)은 성(姓)이고 자고(子高)는 자(字)일 것이라 했다. 池田知久에 의하면 陸德明은 ≪通變經≫을 인용하여 “노자는 이 세상이 개벽한 이래로부터 자신의 몸을 1,200번 바꾸어서 후세에 득도했는데 백성자고가 바로 그 사람이다[通變經云 老子從此天地開闢以來 吾身一千二百變 後世得道 伯成子高是也].”라고 했는데 그다지 신뢰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

 

堯授舜(요수순) : 요가 순에게 천자의 자리를 물려줌. 堯자 앞에 ‘及’자가 있는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辭爲諸侯(사위제후) : 제후가 되기를 사양함. 楊明照는 ‘爲’자를 衍文이라 하고, ‘爲’자가 없는 인용과 ≪呂氏春秋≫의 기록을 들고 있는데 문법상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으나 그대로 두어도 무방하다.

 

耕在野(경재야) : 들에서 밭을 갊. ‘在’는 ‘於’와 같다(吳汝綸, 赤塚忠, 池田知久).

 

就下風(취하풍) : 아래쪽으로 나아감. 〈在宥(재유)〉편 제3장 ‘順下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풍은 方의 뜻. 소수 의견으로, 바람을 마주보고 자리를 잡는다는 뜻으로 보고 높은 사람을 대할 때에 불편한 쪽에 자리를 잡는다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취하지 않는다.

 

立而問焉(입이문언) : 선 채로 여쭈어 봄. 〈齊物論〉편 제1장에 “안성자유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었다[顔成子游 立侍乎前].”라고 한 것처럼 높은 사람의 앞에서 모시고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王叔岷의 설에 따라 ‘立’자를 삭제하기도 하는데(金谷治) 그대로 두어도 可하다.

 

昔堯治天下(석요치천하) : 옛날 요가 천하를 다스릴 때. 이 뒤에 ‘至公無私’가 있는 인용문이 있다(馬叙倫, 王叔岷, 池田知久).

 

 

子高曰(자고왈):
「昔堯治天下(석요치천하),不賞而民勸(불상이민권),不罰而民畏(불벌이민외)。
今子賞罰而民且不仁(금자상벌이민차불인),
德自此衰(덕자차쇠),刑自此立(형자차립),
後世之亂自此始矣(후세지란자차시의)。
夫子闔行邪(부자합행야)?無落吾事(무락오사)!」
俋俋乎耕而不顧(읍읍호경이불고)。

 

자고(子高)가 말했다.

“옛날 요(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상(賞)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힘써 일하였으며 벌(罰)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삼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상(賞)을 내리고 벌(罰)을 주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불인(不仁)을 저지릅니다.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덕(德)이 이로부터 쇠퇴하고 〈인위적인〉 형벌이 이로부터 확립되었으며, 후세의 혼란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머리를 구부려 밭을 갈며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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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賞而民勸(불상이민권) : 상(賞)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힘써 일함. 民이 人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劉文典). 勸과 畏 앞에 각각 自가 있는 인용이 있다(王叔岷). 人爲的으로 賞을 내리거나 하지 않아도 자연히 백성들이 힘써 일하였으며 역시 인위적으로 罰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삼갔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今子賞罰(금자상벌) 而民且不仁(이민차불인) : 지금 당신은 상(賞)을 내리고 벌(罰)을 주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불인(不仁)을 저지르고 있다. 즉 부도덕하게 되어 가고 있다는 뜻. 백성자고(伯成子高)가 제후를 그만두고 농사짓게 된 이유는 바로 이 인위적인 상벌정치에 대한 비판에 있는 것이다. 今子가 今則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德自此衰(덕자차쇠) 刑自此立(형자차립) : 덕(德)이 이로부터 쇠퇴하고 형벌(刑罰)이 이로부터 확립됨. 덕은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것을 대표하고 형벌은 인위적인 것을 대표한 것이다. ‘立’이 ‘作’으로 된 인용문이 있다(王叔岷). 〈在宥(재유)〉편 제1장의 “삼대 이후의 위정자들은 시끄럽게 떠들어 대면서 끝내 상벌을 일삼는다[自三代以下者 匈匈焉 終以賞罰爲事].”라고 한 내용과 제2장의 “삼왕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크게 놀라게 되었다[夫施及三王而天下大駭矣].”라고 한 내용을 참조할 것(池田知久).

 

後世之亂(후세지란) 自此始矣(자차시의) : 후세의 혼란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음. 此가 子로 된 인용문이 있는데(王叔岷, 池田知久) 그것을 따르면 “후세의 혼란이 그대[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 된다.

 

夫子闔行邪(부자합행야) : 당신은 어서 돌아가십시오. 闔(합)은 盍(덮을 ‘합’)의 오류로 하불(何不)의 뜻. 陸德明이 말한 것처럼 盍으로 된 판본도 있고 盍으로 된 인용문도 있다(王叔岷). 池田知久에 의하면 ≪呂氏春秋≫에도 盍으로 되어 있다.

盍은 成玄英 疏에 ‘何不也’로 되어 있다. 何不은 어찌 ……하지 않느냐의 뜻이니, 夫子闔(盍)行邪는 “당신은 어째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가 되는데, 그 口語的인 의미는 “당신은 어서 돌아가십시오.”라는 권유의 뜻이다.

 

無落吾事(무락오사) : 내 일을 방해하지 마라. 無는 금지사로 毋와 같다. 落은 지체시키다, 훼방하다의 뜻. 落이 지체시키다는 뜻인 留로 된 인용문이 있는데(馬叙倫, 王叔岷), 陸德明이 “廢와 같다[猶廢也].”라고 풀이한 것이 좋다(池田知久).

 

俋俋乎耕而不顧(읍읍호경이불고) : 머리를 구부려 밭을 갈며 다시 돌아보지 않음. 俋俋(읍읍)은 밭 가는 모양. 李頤는 俋俋을 “밭 가는 모양[耕貌].”이라 풀이했고, 林希逸은 “머리를 숙이고 밭 가는 모양[低頭而耕之狀].”이라고 풀이했다. 王敔, 宣穎, 陸樹芝, 陳壽昌 등도 이 설에 찬성하고 있다(池田知久). 또한 俋俋乎(읍읍호)를 열심히 一心不亂의 뜻으로 번역하는 주석도 있다(福永光司).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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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外篇 -> 天地

 

7

 

堯治天下,伯成子高立為諸侯。堯授舜,舜授禹,伯成子高辭為諸侯而耕。禹往見之,則耕在野。禹趨就下風,立而問焉,曰:「昔堯治天下,吾子立為諸侯;堯授舜,舜授予,而吾子辭為諸侯而耕。敢問其故何也?」子高曰:「昔堯治天下,不賞而民勸,不罰而民畏。今子賞罰而民且不仁,德自此衰,刑自此立,後世之亂自此始矣。夫子闔行邪?無落吾事!」俋俋乎耕而不顧。

 

요(堯)가 천하를 다스릴 때 백성자고(伯成子高)가 벼슬하여 제후(諸侯)가 되었다. 그러다가 요(堯)가 천자(天子)의 자리를 순(舜)에게 물려주고 또 순(舜)이 우(禹)에게 선양(禪讓)하자, 백성자고(伯成子高)는 제후가 되기를 사양하고 농사를 지었다. 우(禹)가 그를 만나러 갔더니 그는 들에서 밭을 갈고 있었다. 우(禹)가 종종걸음으로 아래쪽으로 나아가 선 채로 이렇게 여쭈었다.

“옛날 요(堯)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당신이 벼슬하여 제후가 되었다가 요(堯)가 순(舜)에게 〈天子의 자리를〉 물려주고 〈그 뒤〉 순(舜)이 나에게 물려주자 당신은 제후되기를 사양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자고(子高)가 말했다.

“옛날 요(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상(賞)을 내리지 않아도 백성들이 힘써 일하였으며 벌(罰)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삼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상(賞)을 내리고 벌(罰)을 주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불인(不仁)을 저지릅니다. 〈타고난 자연 그대로의〉 덕(德)이 이로부터 쇠퇴하고 〈인위적인〉 형벌이 이로부터 확립되었으며, 후세의 혼란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내 일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머리를 구부려 밭을 갈며 다시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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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07[장자(외편)] 第12篇 天地(천지) 07.인위적인 정치로는 세상이 혼란해 진다 (7/16)|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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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 第8章
<無爲로 행하는 것은 天이다>
08.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08/16)

8.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

 


泰初有無(태초유무),無有無名(무유무명),
一之所起(일지소기),有一而未形(유일이미형)。
物得以生(물득이생),謂之德(위지덕);
未形者有分(미형자유분),且然無間(차연무간),謂之命(위지명);
留動而生物(유동이생물),物成生理(물성생리),謂之形(위지형);
形體保神(형체보신),各有儀則(각유의칙),謂之性(위지성)。

 

태초에는 무(無)만 있었고 존재하는 것[有]이란 아무 것도 없었고 이름조차 없었다.

일(一)이 여기서 생겨나 일(一)은 있었으나 아직 형체는 없었다.

이윽고 만물이 이 일(一)을 얻어서 생겨났는데 이것을 덕(德)이라 한다.

아직 형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속에서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보이는 큰〉 틈바구니는 없는 것, 이것을 명(命)이라 한다.

움직여서 만물을 낳는데 물(物)이 이루어져 결[理]이 나타나는 것, 이것을 형(形:형체)이라 한다.

이 형체(形體:육체)가 정신을 보유해서 각각 고유한 법칙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성(性)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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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初有無(태초유무) 無有無名(무유무명) : 태초에는 무(無)만 있었고 유(有)도 없고 이름도 없었음. “원초에는 무(無)가 있었다. 그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존재이었다.”라고 福永光司는 流麗하게 번역하고 있다. 郭象은 “有가 없었기 때문에 이름 붙일 것도 없었다[无有 故无所名].”라고 풀이했고, 成玄英은 “태초의 시대에는 오직 이 无만 있었고 有가 아직 있지 않았다. 有가 이미 있지 않았으니 이름이 어디에 붙겠는가. 그 때문에 有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다[太初之時 惟有此无 未有於有 有旣未有 名將安寄 故无有無名].”라고 풀이했다. 태초에 대해서는 異說이 분분하지만 林希逸이 “조화의 시작[造化之始也].”이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林雲銘, 陸樹芝도 마찬가지.

이 章은 태초의 허무(虛無)로부터 분화(分化)하여 물(物)이 생성(生成)됨을 철학적으로 설명한 장이다.

 

一之所起(일지소기) 有一而未形(유일이미형) : 여기서 일(一)이 생겨나 일(一)은 있었으나 아직 형체는 없었음. 일(一)은 대도(大道) 곧 무(無)를 지칭한다. 일(一)에 대해서도 이설이 분분하지만 林希逸이 “여기의 一자는 바로 无자이다[此一字 便是无字].”라고 풀이한 것이 간명하다.

 

物得以生(물득이생) 謂之德(위지덕) : 만물이 이 일(一)을 얻어서 생겨났는데 이것을 덕(德)이라 일컬음. 곧 덕(德)은 만물에 본래적(本來的)으로 갖추어진 것을 뜻한다. 成玄英은 “德이란 얻음이니 이것을 얻음을 말한 것이다[德者 得也 謂得此也].”라고 풀이했고, 劉鳳苞는 “만물은 모두 一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아직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치이니 무로써 유를 머금은 것이다. 만물은 아직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一을 얻어서 생성된다[萬物皆生于一 此箇未形之理 以无涵有 物得此未形之一以生].”라고 풀이했다.

 

未形者(미형자) 有分(유분) 且然無閒(차연무간) 謂之命(위지명) : 아직 형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속에서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보이는 큰〉 틈바구니는 없는 것, 이것을 命(分化의 必然性)이라 한다. 且然無閒(차연무간)은 異說이 많은 難解한 글. 安東林은 錢穆, 奚侗, 金谷治 등의 說을 참조하여 “아직 형체는 없지만 〈내부에서〉 구분이 생겨 차례로 만물에 깃들면서 조금도 틈이 없다. 이것을 운명(運命)이라 한다.”로 번역하였으나 취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無閒(무한)을 혼연(渾然), 유분(有分)을 찬연(粲然)으로 보는 林希逸의 주석을 택하고 무한(無閒)의 한(閒)을 큰 틈바구니, 커다란 간극(閒隙)으로 이해하는 池田知久의 주석을 따라서 번역하였다. 林希逸의 주는 다음과 같다. “아직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一이 일어날 때를 말한다. 구분이 있는 것 같지만 또 그것을 구분하려고 하면 〈큰 틈바구니가 보이지 않아〉 구분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且然無閒(또한 그러나 간격이 없음)이라고 말한 것이다. 간격이 없는 것은 바로 혼연한 것이고 구분이 있는 것은 바로 찬연히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의 命자는 바로 天命謂性의 命과 같다[未形者 言一所起之時也 若有分矣 而又分他不得 故曰且然无閒 无間 便是渾然者 有分 便是粲然者 此命字 卽天命謂性之命].” 이처럼 林希逸은 여기의 命자를 ≪中庸≫ 제1장의 天命之謂性의 命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하였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留動而生物(유동이생물) 物成生理(물성생리) 謂之形(위지형) : 움직여서 만물을 낳는데 物이 이루어져 결이 나타나는 것 이것을 形이라 함. 留動(유동)의 留에 대해서는 머물다의 뜻으로 보는 견해와 流의 가차로 보는 견해가 있다. 成玄英은 留를 머물다의 뜻으로 보고 留動을 動靜과 같은 의미로 보았지만, 陸德明이 流로 된 판본이 있다고 했고 또 맥락상 流動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武延緖, 奚侗, 阮毓崧, 馬叙倫 등의 학자들은 流의 뜻으로 풀이했다. 따라서 留動而生物은 앞의 一이 流行하여서 만물을 생성한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物成生理에 대한 견해 또한 분분하지만 ≪韓非子≫ 〈解老〉편에서 “理는 사물을 이루는 文理이고 道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거이다[理者成物之文也 道者萬物之所以成也].”라고 한 언표를 따라 사물을 이루는 결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赤塚忠은 여기의 ‘理’는 宋代의 학자가 제창한 보편적 진리는 아니고, 개개의 사물이 성립하고 있는 구체적 진실이라고 해설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形體保神(형체보신) 各有儀則(각유의칙) 謂之性(위지성) : 이 형체(形體)가 정신을 보유해서 〈육체와 정신의 營爲에〉 각각 고유한 법칙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성(性)이라 함. 林希逸은 “이 한 구절은 바로 ≪詩經≫에서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고 한 것과 같고, ≪春秋左氏傳≫에서 이른바 ‘백성들은 천지의 中을 얻어서 태어나 동작과 몸가짐에 법칙이 있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形體는 氣이고 氣 속에 神이 있다. 이른바 의칙은 모두 이 神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바로 성 속에 스스로 인의예지의 뜻이 있다는 말이다[此一句 便是詩有物有則 便是左傳所謂民受天地之中以生 有動作威儀之則也 形體 氣也 氣中有神 所謂儀則 皆此神爲之 便是性中自有仁義禮智之意].”라고 풀이했다. 한편 福永光司는 “만물은 제각기 ‘形’을 가지고 있는데, 이 形을 움직이는 것이 ‘神’ 즉 精神, 마음이다. ‘形’이 道에 의해서 생겨나듯이 ‘神’도 또한 道에 근본한다. 形은 神을 머무르게 하는 도구이고, 形이 神을 머무르게 함으로써 形神 각각의 일에 自然의 법칙이 갖춰지고 있는 상태를 ‘性’이라고 한다.”고 풀이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性修反德(성수반덕),德至同於初(덕지동어초)。
同乃虛(동내허),虛乃大(허내대)。
合喙鳴(합훼명),喙鳴合(훼명합),與天地為合(여천지위합)。
其合緡緡(기합민민),若愚若昏(약우약혼),
是謂玄德(시위현덕),同乎大順(동호대순)。

 

성이 닦여져 덕(德)으로 돌아가면 덕이 처음과 같아짐에 이르게 될 것이니

같아지면 모든 것이 비게 되고, 비면 곧 대(大)가 될 것이니

새처럼 지저귀던 부리를 닫고 침묵할 것이다. 부리를 닫고 침묵하게 되면 천지와 합하여,

완전하게 합일이 이루어지면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고 어두운 사람 같으리니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한다. 위대한 순응에 동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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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修反德(성수반덕) 德至同於初(덕지동어초) : 성이 닦여져 德으로 돌아가면 덕이 처음과 같아짐에 이르게 될 것임. 反은 返과 같다. 林希逸이 “덕이 이미 지극하고 극진해지고 나면 사물이 없었던 처음과 같아질 것이니……至는 지극함이다[德旣至矣盡矣 則與無物之初同矣……至 極至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며, 또한 그것이 定說이다(池田知久). 初는 맨 처음의 太初(成玄英).

 

同乃虛(동내허) 虛乃大(허내대) : 같아지면 모든 것이 비게 되고, 비면 곧 大가 될 것임. 呂惠卿이 “같아지면 비게 된다는 것은 그 빔이 ‘처음에 아직 사물이 있기 이전의 단계’에 도달함이고 비면 곧 大가 된다는 것은 그 관대함이 ‘같지 않은 것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경지’에 도달함이다[同乃虛 則其虛至於未始有物也 虛乃大 則其大至於不同同之也].”라고 풀이한 것이 적절하다. 褚伯秀는 虛가 위 문장의 無를 받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大는 ≪老子≫ 제25장의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니 字(통칭)를 붙여서 말하면 道라 하고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말하면 大라 한다[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合喙鳴(합훼명) : 새처럼 지저귀던 부리를 닫고 침묵할 것이다. 合은 赤塚忠이 닫는다는 뜻인 ‘闔(문짝 ’합‘’의 가차자로 본 것이 적절하다. 喙(훼)는 成玄英이 새의 부리[鳥口]라고 풀이한 것을 따른다. 한편 福永光司는 “‘合喙鳴’은 마치 새가 부리로 無心의 말을 재잘거리는 것처럼 조금의 사심(邪心)도 없이 자유자재하게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의 무심(無心)한 지저귐처럼 얽매이지 않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면 천지우주의 조화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풀이하였는데 참고할 만하다.

 

與天地爲合(여천지위합) 其合緡緡(기합민민) : 천지와 합하여 합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면. 緡(민)은 보이지 않음. 기합민민(其合緡緡)은 합일이 완전하게 이루어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 〈在宥〉편 제3장의 “나는 해와 달과 함께 빛나고 천지와 함께 영원할 것이니 사람들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라도 어지러워서 보이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더라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나만 홀로 남을 것입니다[吾與日月參光 吾與天地爲常 當我緡乎遠我昏乎 人其盡死 而我獨存乎].”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 ‘緡’자의 활용 예가 이미 나왔다. 林希逸은 “泯泯과 같다[猶泯泯也].”라고 풀이했고 王敔와 宣穎, 馬叙倫 등도 비슷한 견해이다. 赤塚忠은 ‘緡緡(민민)’은 어떠한 구별도 없이 일체(一體)가 된 것을 말한다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若愚若昏(약우약혼) :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고 어두운 사람 같음. 若愚若昏은 〈齊物論〉 제4장에서 “성인은 우둔하다[聖人愚芚]”라고 한 것과 ≪老子≫ 제20장에서 “세상 사람들은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둡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만 홀로 어리석다[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라고 한 내용과 유사한 맥락이다.

 

是謂玄德(시위현덕) : 이를 일러 현덕이라 함. 玄德(현덕)은 깊은 덕. 玄德은 ≪老子≫ 제10장에 “만물을 낳아서 기르니 낳아 주지만 차지하지 아니하고 도와주지만 뽐내지 아니하고 길러 주지만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玄德이라 한다[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라고 했고, ≪書經≫ 〈舜典〉에도 “〈舜의〉 깊은 덕이 위로 올라가 요임금에게 보고되어 마침내 〈堯가〉 임금의 자리로 명령하였다[玄德升聞 乃命以位].”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同乎大順(동호대순) : 위대한 순응에 동화함. 저절로 자연의 도(道)에 순응(順應)하여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林希逸은 “대순은 태초의 자연의 이치이다[大順 則泰初自然之理也].”라고 풀이했는데 적절한 견해이다. 羅勉道는 “한 사람의 백성도 한 가지 물건도 따르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無一民一物不順也].”라고 풀이했는데 다소 과장이 보태진 견해이다. 池田知久는 이 羅勉道의 해석을 成玄英 疏에서 由來한 해석으로 보면서 부적당하다고 하고 있다. 赤塚忠은 道의 자연적 展開와 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고 풀이했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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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外篇 -> 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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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初有無,無有無名,一之所起,有一而未形。物得以生,謂之德;未形者有分,且然無間,謂之命;留動而生物,物成生理,謂之形;形體保神,各有儀則,謂之性。性修反德,德至同於初。同乃虛,虛乃大。合喙鳴,喙鳴合,與天地為合。其合緡緡,若愚若昏,是謂玄德,同乎大順。

태초에는 무(無)만 있었고 존재하는 것[有]이란 아무 것도 없었고 이름조차 없었다. 일(一)이 여기서 생겨나 일(一)은 있었으나 아직 형체는 없었다. 이윽고 만물이 이 일(一)을 얻어서 생겨났는데 이것을 덕(德)이라 한다. 아직 형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속에서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보이는 큰〉 틈바구니는 없는 것, 이것을 명(命)이라 한다. 움직여서 만물을 낳는데 물(物)이 이루어져 결[理]이 나타나는 것, 이것을 형(形:형체)이라 한다. 이 형체(形體:육체)가 정신을 보유해서 각각 고유한 법칙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성(性)이라 한다. 성이 닦여져 덕(德)으로 돌아가면 덕이 처음과 같아짐에 이르게 될 것이니 같아지면 모든 것이 비게 되고, 비면 곧 대(大)가 될 것이니 새처럼 지저귀던 부리를 닫고 침묵할 것이다. 부리를 닫고 침묵하게 되면 천지와 합하여, 완전하게 합일이 이루어지면 마치 어리석은 사람 같고 어두운 사람 같으리니 이를 일러 현덕(玄德)이라 한다. 위대한 순응에 동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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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08[장자(외편)] 第12篇 天地(천지) 08.태초에는 무(無)만이 있었다 (8/16)|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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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 第9章
<無爲로 행하는 것은 天이다>
09.성인은 인위적인 지혜에 힘쓰지 않는다.(09/16)

 

09.성인은 인위적인 지혜에 힘쓰지 않는다.

 


夫子問於老聃曰(부자문어노담왈):
「有人治道若相放(유인치도약상방),可不可(불가불),然不然(연불연)。
辯者有言曰(변자유언왈):『離堅白若縣宇(이견백약현우)。』
若是(약시),則可謂聖人乎(즉가위성인호)?」

 

 

공자가 노담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닦는데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합니다.

변론가들이 말하기를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누되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하니

이 같은 사람은 성인이라 할 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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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子(부자) : 선생. 뒤에 이름이 구(丘)로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공자를 가리킨다. 이하 설화의 등장인물은 공자(孔子)와 노담(老聃)이고, 문답의 내용은 〈應帝王(응제편)〉편에 보이는 양자거(陽子居)와 노담(老聃)의 문답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인지(人知)를 사용하는 유위(有爲)의 정치를 배척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치를 찬미하고 있다(福永光司).

참고로 〈應帝王〉편 제4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부기한다.

양자거(陽子居)가 노담(老耼)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아주 민첩하고 굳세며, 만물을 잘 꿰뚫고 만사를 분명히 알며, 도를 배우는 데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명왕(明王)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이런 사람은 성인과 비교하면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이다. 게다가 호랑이와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의 민첩함과 살쾡이를 잡는 개는 우리를 불러오는 법이니 이 같은 사람을 明王에 견줄 수 있겠는가.” 양자거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고 말했다. “감히 명왕의 다스림에 대해 여쭙습니다.” 노담이 대답했다. “명왕의 다스림은 공(功)이 천하를 뒤덮어도 자기가 한 일로 여기지 않고, 교화(敎化)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이 느끼지 못하며, 베풂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이름을 일컫지 않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하여,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인 경지에 서서 아무 것도 없는 근원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陽子居見老耼曰 有人於此 嚮疾彊梁 物徹疏明 學道不勌 如是者 可比明王乎 老耼曰 是 於聖人也 胥易技係 勞形怵心者也 且曰虎豹之文 來田 猨狙之便 執斄之狗 來藉 如是者 可比明王乎 陽子居 蹴然曰 敢問明王之治 老耼曰 明王之治 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不恃 有莫擧名 使物自喜 立乎不測而遊於无有者也].”

 

有人治道(유인치도) : 도를 닦은 사람이 있음. 치도(治道)는 수도(修道)와 같다. 褚伯秀는 ‘先王之治道’라 했고 ‘羅勉道는 所治之道’라 했지만 모두 옳지 않고, 阮毓崧이 “治는 修와 같다. 도를 닦은 사람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治 同修也 言有修道者].”라고 풀이한 것이 정확하다(池田知久).

 

若相放(약상방) :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남. 放(방)은 어긋난다는 뜻으로 논쟁을 좋아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거스르는 것이다.

 

可不可(불가불) 然不然(연불연) :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함. 呂惠卿이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함은 만물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일로 삼는 것이다[可不可 然不然 則以齊物爲事者也].”라고 풀이했는데 郭象의 견해를 따른 것으로 이 견해를 따른다. 林雲銘은 “治道 중에는 가한 것과 불가한 것이 있고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言於治道之中 有可與不可 有然與不然].”라고 풀이했고 王夫之, 宣穎, 陸樹芝 등이 이 견해를 따르지만 적절치 않다(池田知久).

 

離堅白(이견백) 若縣㝢(약현우) :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눔이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함. 離堅白(이견백)은 ‘단단하고 흰 돌[堅白石]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주장하는 궤변(詭辯)으로 〈齊物論〉, 〈德充符〉, 〈騈拇〉, 〈胠篋〉편 등에 이미 나왔다. 단단하다는 개념과 희다는 개념을 사물과 분리시켜서 이해함으로써 사물의 내적 연관을 부정한 논변이다. 若縣㝢(약현우)의 㝢는 陸德明이 宇로 읽은 것이 적절하다. 司馬彪가 若縣㝢를 “변론의 명백함이 마치 집에 매달아 사람들 앞에 보여 주는 것과 같다[辯明白 若縣室在人也].”라고 풀이한 것이 무난하다.

 


老聃曰(노담왈):
「是胥易技係(시서기계),勞形怵心者也(노형출심자야)。
執狸之狗成思(집리지구성사),猿狙之便自山林來(원저지편자산림래)。
丘(구)!予告若(여고약),而所不能聞與而所不能言(이소불능문여이소불능언)。

 

노담(老聃)이 말했다.

“그런 사람은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다.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산림(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丘여!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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胥易技係(서이기계) :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 胥(서)는 서리(胥吏)의 胥로 하급 관리를 뜻하며 易(이)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잡역(雜役)의 뜻. 技係는 기술에 얽매인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기술자의 잔재주를 의미한다.

 

勞形怵心者也(노형출심자야) :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임.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임. ‘勞形(노형)’은 몸을 지치게 한다는 뜻이고 ‘怵心(출심)’은 “마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다.”는 뜻. 成玄英은 怵(출)을 두려워한다[怵惕]로 풀이했고, 林希逸은 “그 마음이 벌벌 떠는 것을 말한다[言其心恐恐然也].”라고 풀이했다.

 

執狸之狗成思(來田)(집리지구성사) 猿狙之便(원저지편) 自山林來(자산림래) :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음. 吳汝綸, 奚侗, 章太炎 등은 모두 〈應帝王〉편에 근거하여 成思는 來田의 잘못이라고 했는데 타당한 견해이다. 다만 〈應帝王〉편에는 ‘虎豹之文來田 猨狙之便 執斄之狗 來藉’으로 되어 있어 “호랑이와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의 민첩함과 살쾡이 잡는 개는 우리를 불러온다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지만 여기의 執狸之狗(집리지구)는 사냥개를 의미하므로 ‘사냥꾼을 불러온다.’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치 않기 때문에 來田을 ‘사냥에 동원된다는 뜻’으로 보고 번역하였다. 모두 자신이 가진 재능 때문에 화란을 자초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執留之狗成思 猿狙之便 自山林來”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 “묶여 있는 개[執留之狗]는 이리저리 머리 굴려 생각하고[成思] 원숭이의 민첩함[猿狙之便]은 山林 속에서 살던 버릇에서 由來한다[自山林來].”라고 번역하면서, 여기 ‘成思’를 〈應帝王〉편 등에 의거해서 ‘來由’ 등으로, 文字를 고쳐서 해석하는 註解의 不可함을 지적한 見解(池田知久)도 있으나 여기서는 취하지 않는다.

 

予(여) 告若而所不能聞(고약이소불능문) 與而所不能言(여이소불능언) :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若과 而는 모두 2인칭(成玄英).

 


凡有首(범유수)、有趾(유지)、無心(무심)、無耳者衆(무이자중),
有形者與無形無狀而皆存者盡無(유형자여무형무상이개존자진무)。
其動(기동),止也(지야);其死(기사),生也(생야);其廢(기폐),起也(기야)。
此又非其所以也(차우비기소이야)。
有治在人(유치재인),忘乎物(망호물),忘乎天(망호천),其名為忘己(기명위망기)。
忘己之人(망기지인),是之謂入於天(시지위입어천)。」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고,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연 없다.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天)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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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有首有趾(범유수유지) 無心無耳者(무심무이자) 衆(중) :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음, 머리 있고 발이 있음은 곧 오체(五體)가 구족(具足)함을 말한다. 이처럼 오체(五體)가 멀쩡하면서도 〈無形‧無聲의 것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없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는 뜻이다. 王先謙은 “몸뚱이를 갖추어서 사람이 되었지만 지각이 없고 견문이 없는 자는 모두 이에 해당한다[具體爲人 而無知無聞者皆是].”라고 풀이했다.

 

有形者(유형자) 與無形無狀而皆存者(여무형무상이개존자) 盡無(진무) :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혀 없음. 무형무상(無形無狀)은 도(道)를 가리키며(林雲銘, 池田知久), 이 도(道)와 함께하여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란 도(道)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란 뜻이다. 郭象은 “형체를 가진 것은 잘 변하기 때문에 무형무상의 도와 함께 존속할 수 없음을 말한 것[言有形者善變 不能與無形無狀者幷存也].”이라고 풀이했다.

 

其動止也(기동지야) 其死生也(기사생야) 其廢起也(기폐기야) 此又非其所以也(차우비기소이야) :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 所以의 以는 爲와 같다. 郭象은 用이라 했고, 阮毓崧은 爲와 같다고 했는데 후자가 옳다. ≪論語≫ 〈爲政〉에 “그가 하는 것을 보며 그가 말미암는 까닭을 살피며 편안해 하는지를 살핀다[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라고 한 데서도 以가 爲의 뜻으로 쓰인 용례가 있다. 이 부분의 내용은 有形의 存在가 動하고 止하고, 死하고 生하고, 廢하고 起함에 있어 그것이 그 有形의 존재 스스로의 作用의 결과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有治在人(유치재인) :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음. 성인은 부득이 천하를 다스릴 일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맡겨서 스스로 다스리게 한다는 뜻(方勇‧陸永品). 福永光司는 이 아래에 ‘無治在天’의 한 句를 보충하면 의미가 한층 분명해질 것이라고 했는데 참고할 만하다. 〈秋水〉편에도 이와 유사한 ‘德在乎天’이라는 구절이 있다.

 

忘乎物(망호물) 忘乎天(망호천) 其名爲忘己(기명위망기) :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함. 郭象은 “天과 物을 모두 잊어버렸으니 자기 자신만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다시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天物皆忘 非獨忘己 復何有哉].”라고 풀이했다. ‘忘己’는 〈大宗師〉편 제7장에 나오는 坐忘과 유사한 표현. 〈逍遙遊〉편 제1장과 〈在宥〉편 제6장에 나오는 ‘無己’를 좀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다(池田知久).

 

忘己之人(망기지인) 是之謂入於天(시지위입어천) :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컬음. 〈大宗師〉편 제1장에 ‘入於廖天一’이라고 있고, 〈徐无鬼〉편에 ‘不以人入天’이라고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福永光司, 池田知久). 郭象은 “사람이 잊기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인데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렸으니 또 무엇을 알겠는가. 이것이 바로 알지도 않고 지각하지도 않으면서 자연과 冥合하는 것이다[人之所不能忘者 己也 己猶忘之 又奚識哉 斯乃不識不知而冥於自然].”라고 풀이했다. 成玄英도 郭象의 注를 따라 “入은 만남이다. 천하에서 가장 잊기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인데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렸으니 천하의 어떤 사물이 족히 마음속에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대상과 나를 모두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때문에 자연의 도에 명합할 수 있다[入 會也 凡天下難忘者 己也 而己尙能忘 則天下有何物足存哉 是知物我兼忘者 故冥會自然之道也].”라고 풀이했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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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外篇 -> 天地

 

9

 

夫子問於老聃曰:「有人治道若相放,可不可,然不然。辯者有言曰:『離堅白若縣宇。』若是,則可謂聖人乎?」老聃曰:「是胥易技係,勞形怵心者也。執留之狗成思,猿狙之便自山林來。丘!予告若,而所不能聞與而所不能言。凡有首、有趾、無心、無耳者眾,有形者與無形無狀而皆存者盡無。其動,止也;其死,生也;其廢,起也。此又非其所以也。有治在人,忘乎物,忘乎天,其名為忘己。忘己之人,是之謂入於天。」

 

공자가 노담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를 닦는데 세상의 상식과 서로 어긋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합니다. 변론가들이 말하기를 ‘단단하고 흰 것을 둘로 나누되 마치 처마 끝에 매달아 보여 주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하니 이 같은 사람은 성인이라 할 만합니까?”

노담(老聃)이 말했다.

“그런 사람은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이게 할 뿐이다. 〈예를 들면〉 살쾡이 잡는 사냥개가 사냥에 동원되고 민첩한 원숭이가 산림(山林)에서 붙잡혀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丘여! 내 그대에게 그대가 들을 수 없는 것과 그대가 말할 수 없는 것을 일러 주겠다. 무릇 머리가 있고 발이 있어도 마음이 없고 귀가 없는 존재가 많고,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는 전연 없다. 형체가 있는 것들은 움직임과 그침, 삶과 죽음, 폐지되고 일어남이 있으니 또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물(萬物)을 잊고 자연의 천(天)까지도 잊는 것은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이라 한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天(자연)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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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09[장자(외편)] 第12篇 天地(천지) 09.성인은 인위적인 지혜에 힘쓰지 않는다. (9/16)|작성자 swings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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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莊子 外篇 第12篇 天地(천지) 第10章
<無爲로 행하는 것은 天이다>
10.최상의 정치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10/16)

 

10.최상의 정치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將閭葂見季徹曰(장려면현계철왈):
「魯君謂葂也曰(노군위면야왈):『請受教(청수교)。』
辭不獲命(사불획명),既已告矣(기이고의),
未知中否(미지중부),請嘗薦之(청상천지)。
吾謂魯君曰(오위로군왈):
『必服恭儉(필복공검),拔出公忠之屬(발출공충지속),
而無阿私(이무아사),民孰敢不輯(민숙감부집)!』」

 

장려면(將閭葂)이 계철(季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前日에〉 노나라 임금이 저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기에

저는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여 결국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여 시험 삼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저는 노군(魯君)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게 행동하여 공평(公平)하고 충직한 부류의 사람을 발탁 등용하고

사사로이 편애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화합하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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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閭葂(장려면) : 인명. 가공의 인물로 실존 인물이 아니다. 다만 뒤에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면(葂)이라 한 것으로 보아 장려(將閭)가 복성이고 이름이 면(葂)임을 알 수 있다. 王夫之는 힘써 노력한다는 뜻인 면강(勉强)을 우의(寓意)로 삼아 葂이라 했다고 풀이했다.

 

季徹(계철) : 인명. 역시 가공의 인물. 王夫之는 徹(철)을 통(通)으로 풀이하고 사리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뜻을 우의(寓意)로 삼았다고 했다. 陸德明의 ≪經典釋文≫에 의하면, 혹 노(魯)나라의 유력한 집안인 계씨(季氏)의 일족(一族)이 아닌지 모르겠다. 馬叙倫은 〈則陽〉편의 季眞을 말한다고 하고 있다(池田知久).

 

辭不獲命(사불획명) : 사양했지만 허락을 얻지 못함. 辭는 사양함. 命은 명령으로, 여기서는 임금의 허락을 뜻한다.

 

旣已告矣(기이고의) : 이미 노나라 임금에게 말함. 노나라 임금에게 정치하는 방도를 일러 주었다는 뜻.

 

未知中否(미지중부) : 아직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알지 못함. 中은 的中의 뜻으로 꼭 맞음.

 

請嘗薦之(청상천지) : 시험 삼아 드릴까 함. 자신이 노나라 임금에게 말했던 이야기를 진술하여 비정(批正)받고자 한다는 뜻. 林希逸은 薦을 陳으로 풀이하고 “말한 것을 진술하고자 함이다[請以所言陳之].”라 했고, 劉鳳苞는 “임금에게 말했던 것을 계철에게 질정받고자 함이다[欲以所言君者 就正于季徹].”라고 풀이했다.

 

必服恭儉(필복공검) :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게 행동함. 服은 복행(服行), 또는 궁행(躬行)으로 몸소 실천한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정치하는 도리는 반드시 먼저 공경과 검소와 청약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爲政之道 先須躬服恭敬儉素淸約].”라고 풀이했다.

 

拔出公忠之屬(발출공충지속) 而無阿私(이무아사) : 공평(公平)하고 충직한 부류의 사람을 발탁 등용하고 사사로이 편애함이 없음. 阿(아)는 비호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편애한다는 의미. 私는 사소호지인(私所好之人)으로 사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따라서 무아사(無阿私)는 사사로이 좋아하는 사람을 편애하거나 비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民孰敢不輯(민숙감부집) : 백성들이 누가 감히 화합하지 않겠는가. 輯(집)은 화합한다는 뜻.

 


季徹局局然笑曰(계철국국연소왈):
「若夫子之言(약부자지언),於帝王之德(어제왕지덕),
猶螳蜋之怒臂以當車軼(유당랑지노비이당거철),則必不勝任矣(즉필불승임의)。
且若是(차약시),則其自為處危(즉기자위처위),其觀臺多物(기관대다물),
將往投跡者衆(장왕투적자중)。」

 

계철(季徹)이 몸을 구부려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은 제왕(帝王)의 덕(德)에 비하면

마치 버마제비가 팔뚝을 휘둘러 수레에 맞서는 것과 같아서 틀림없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당신이 말한 대로 한다면 노나라 임금이 스스로 머물 곳을 만들어서 〈賢者를 모으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는〉 조망대를 높이 쌓는 것이 될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지(賢知)의 행동을 흉내 내다가 도리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잃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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局局然笑(국국연소) : 몸을 구부려 웃음. 成玄英은 “局局은 몸을 구부려 웃음이다[局局 俛身而笑也].”라고 풀이했다. 우스워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라는 견해(方勇‧陸永品)와 크게 웃는 모양이라는 견해(王叔岷)도 있다.

 

於帝王之德(어제왕지덕) 猶螳螂之怒臂(유당랑지노비) 以當車轍(이당거철) : 제왕(帝王)의 덕에 견주어 볼 때 마치 버마제비가 팔뚝을 휘둘러 수레에 맞서는 것과 같음. 〈人間世〉편 제3장에는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에 맞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怒其臂 以當車轍 不知其不勝任也].”라고 하여 맥락은 다소 다르지만 이 부분과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이 章에서는 帝王과 大聖이 천하를 지배하는 道를 말하고 있다. 帝王=大聖.

 

<참고> 第4篇 人間世(인간세) : 12.당랑거철(螳螂拒轍) : 사마귀의 무모함

https://blog.naver.com/swings81/221147651696

○ 怒其臂(노기비) 以當車轍(이당거철) :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에 맞섬. 怒는 사나운 기세로 휘두른다는 뜻. 臂(비)는 당랑의 앞발. 當은 감당하다는 뜻. 轍(철)은 본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지만 여기서는 수레바퀴를 의미한다.

※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强者)에게 함부로 덤빔

必不勝任矣(필불승임의) : 틀림없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임. 任은 짐으로, 여기서는 일이나 책임을 뜻한다.

 

其自爲處(기자위처) 危其觀臺(위기관대) : 스스로 머물 곳을 만들어서 조망대를 높이 쌓을 것임. 危(위)는 高와 같다(方勇‧陸永品). 觀臺(관대)는 조망대. 이 부분은 異說이 많은 곳이라 여러 해석이 분분하게 많다. 특히 危자를 여기서는 高로 보아 높이 쌓는다는 뜻, 즉 〈賢者를 모으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는〉 조망대를 높이 쌓는 것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이것을 글자 그대로 위험하다는 뜻으로 읽어 ‘스스로를 위험에 부닥치게 만든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福永光司, 安東林).

 

多物將往(다물장왕) : 많은 사람들이 갈 것임. 物은 사람. 往은 몰려간다는 뜻. 곧 자기를 팔려는 많은 사람들이 광분(狂奔)하듯이 몰려간다는 뜻.

 

投迹者衆(투적자중) : 현지(賢知)의 행동을 흉내 내다가 도리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잃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投迹(투적)은 현자(賢者)나 지자(知者)의 행동을 흉내 낸다는 뜻. 이 부분은 ‘亢足投迹 不安其本步也’라 한 郭象의 注를 따라, 현지(賢知)의 행동을 흉내 내다가 도리어 자기의 본래적인 걸음걸이가 불안해져서 그 결과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잃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는 뜻으로 보았다.

 


將閭葂覤覤然驚曰(장려면혁혁연경왈):
「葂也汒若於夫子之所言矣(면야망약어부자지소언의)。
雖然(수연),願先生之言其風也(원선생지언기풍야)。」
季徹曰(계철왈):
「大聖之治天下也(대성지치천하야),搖蕩民心(요탕민심),
使之成教易俗(사지성교역속),舉滅其賊心而皆進其獨志(거멸기적심이개진기독지),
若性之自為(약성지자위),而民不知其所由然(이민부지기소유연)。
若然者(약연자),豈兄堯、舜之教民(기형요,순지교민),溟滓然弟之哉(명행연제지재)?
欲同乎德而心居矣(욕동호덕이심거의)。」

 

장려면(將閭葂)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는 선생의 말에 그만 어리둥절해졌습니다.

하지만 〈無爲自然의〉 道에 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계철(季徹)이 말했다.

“위대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교화를 이루고 풍속을 고치게 하여 타인을 해치는 험악(險惡)한 마음을 모두 없애고 백성들 모두가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뜻을 이루게 해서

마치 본성이 저절로 그러하듯 하면 백성들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요순이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을 흡족히 여겨서 가지런히 그들과 대등해지려 하겠는가?

욕심이 덕과 같아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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覤覤然驚(혁혁연경) : 깜짝 놀람. 覤覤(혁혁: 놀랄 ‘혁’)은 크게 놀라는 모습. 두려워하는 모양이라는 견해(方勇‧陸永品 등)도 있다.

 

汒若於夫子之所言矣(망약어부자지소언의) : 선생의 말에 어리둥절해짐. 곧 당신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는 뜻. 汒若(망약)은 어리둥절한 모양으로 망연(茫然)과 같다.

 

願先生之言其風也(원선생지언기풍야) : 〈무위자연의〉 道에 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宋의 林希逸이 “言其風(언기풍)은 또한 그 대략을 말함과 같다[亦猶曰言其略也].”라고 하였으며 또 淸나라의 兪樾이 “풍(風)은 마땅히 범(凡)으로 읽어야 하니 대범을 말한다고 한 것과 같다[風當讀爲凡 猶云言其大凡也].”라고 하여 大凡의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으나 여기서는 통설대로 읽었다. 成玄英은 “風은 가르침이다[風 敎也].”라고 하여 風敎의 뜻으로 보았으며 福永光司는 其風은 그가 信奉하는 道 즉 無爲自然의 道를 의미하며 ≪莊子≫의 제일 마지막 〈天下〉편에 보이는 ‘聞其風而悅之’의 風과 같다고 보았다. 선생께서 道에 대해 말씀하심을 듣고 싶다, 곧 道에 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싶다 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搖蕩民心(요탕민심) :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킴. 백성들의 마음을 끝없이 멀고 광대(廣大)한 것으로 하여[搖蕩하여] 자연의 본성에 맡겨 자유롭게 한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王先謙과 宣穎은 搖蕩을 고무(鼓舞)시킨다는 뜻으로 보았으며, 한편 褚伯秀는 “자연스러운 민심을 그대로 따르기를 마치 비와 바람이 만물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한다[因民心之自然 如風雨搖蕩萬物].”라고 풀이했다. 曹受坤은 “搖蕩民心은 요즘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해방시킨다는 말과 같으니 사상의 자유를 얻게 함이다.”라고 풀이했는데 이 또한 참고할 만한 견해이다.

 

使之成敎易俗(사지성교역속) : 백성들로 하여금 교화를 이루고 풍속을 고치게 함. 敎는 敎化. 俗은 風俗.

 

擧滅其賊心(거멸기적심) : 타인을 해치는 험악(險惡)한 마음을 모두 없앰. 擧는 모두, 皆와 같다(陸德明). 林希逸은 賊心(적심)을 “유위지심(有爲之心)”으로 풀이했고, 羅勉道는 “서로 해치는 마음[相戕之心]”으로 풀이했다.

 

皆進其獨志(개진기독지) : 백성들 모두가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뜻을 이루게 함. 林希逸은 獨志의 獨을 〈大宗師〉편 제4장에 나오는 조철견독(朝徹見獨)의 獨과 같다고 보고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고 자신만 홀로 얻은 뜻이라고 풀이했지만 〈大宗師〉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소 무리한 견해이다. 王叔岷이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뜻[自得之志].”으로 풀이한 것이 적당하다.

 

若性之自爲(약성지자위) : 마치 본성이 저절로 그러하듯 함. 자위(自爲)는 자연(自然)과 같다. 林雲銘은 若을 順으로 풀이했지만 이 부분은 백성들이 본성이 저절로 그러한 것처럼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맥락이기 때문에 若을 ‘같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타당하다.

 

民不知其所由然(민부지기소유연) : 백성들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함. 所由然(소유연)은 所由然之故. 成玄英은 “본성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率性而動 故不知其所由然也].”라고 풀이했다.

 

豈兄堯舜之敎民(기형요순지교민) 溟涬然弟之哉(명행연제지재) : 어찌 요순이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을 흡족히 여겨서 가지런히 그들과 대등해지려 하겠는가. 兄과 弟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설이 있다. 글자를 그대로 두고 兄을 ‘형으로 존경한다’는 뜻으로, 弟는 ‘아우로서 따른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郭象)가 있고, 兄을 比況의 況으로 보고 ‘비유하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孫詒讓) 등이 있지만, 陸德明의 기록을 따르면 元嘉본에는 兄이 足으로 되어 있다고 했으므로 兄을 足의 오자로 보고 弟는 夷의 오자로 보는 王叔岷의 견해가 타당하다. 모두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된 경우에 해당한다. 夷는 王叔岷이 풀이한 것처럼 平의 뜻으로 ‘대등하다’는 뜻이고 溟涬은 ‘대등한 모양’이다. 말할 것도 없이 堯舜은 여기서 世俗의 聖者라는 뜻.

 

欲同乎德而心居矣(욕동호덕이심거의) : 욕심이 덕과 같아지면 마음이 편안해짐. 而는 則과 같다(王叔岷). 居는 安定의 뜻(成玄英). 欲을 이 해석처럼 욕심이라는 名詞로 보지 않고, …하고자 할 欲으로 보아 “堯舜 정도가 아닌 진짜 무위자연의 聖人은 德과 同化해서[同乎德] 마음 편히 安定[心居]되고자 할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취하지 않았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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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外篇 -> 天地

 

10

 

將閭葂見季徹曰:「魯君謂葂也曰:『請受教。』辭不獲命,既已告矣,未知中否,請嘗薦之。吾謂魯君曰:『必服恭儉,拔出公忠之屬,而無阿私,民孰敢不輯!』」季徹局局然笑曰:「若夫子之言,於帝王之德,猶螳蜋之怒臂以當車軼,則必不勝任矣。且若是,則其自為處危,其觀臺多物,將往投跡者眾。」將閭葂覤覤然驚曰:「葂也汒若於夫子之所言矣。雖然,願先生之言其風也。」季徹曰:「大聖之治天下也,搖蕩民心,使之成教易俗,舉滅其賊心而皆進其獨志,若性之自為,而民不知其所由然。若然者,豈兄堯、舜之教民,溟滓然弟之哉?欲同乎德而心居矣。」

 

장려면(將閭葂)이 계철(季徹)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前日에〉 노나라 임금이 저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기에 저는 사양하였지만 허락을 얻지 못하여 결국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 알지 못하여 시험 삼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저는 노군(魯君)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게 행동하여 공평(公平)하고 충직한 부류의 사람을 발탁 등용하고 사사로이 편애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화합하지 않겠습니까!’ ”

계철(季徹)이 몸을 구부려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은 제왕(帝王)의 덕(德)에 비하면 마치 버마제비가 팔뚝을 휘둘러 수레에 맞서는 것과 같아서 틀림없이 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당신이 말한 대로 한다면 노나라 임금이 스스로 머물 곳을 만들어서 〈賢者를 모으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는〉 조망대를 높이 쌓는 것이 될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지(賢知)의 행동을 흉내 내다가 도리어 자기 존재의 근거를 잃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장려면(將閭葂)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는 선생의 말에 그만 어리둥절해졌습니다. 하지만 〈無爲自然의〉 道에 대한 선생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계철(季徹)이 말했다.

“위대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교화를 이루고 풍속을 고치게 하여 타인을 해치는 험악(險惡)한 마음을 모두 없애고 백성들 모두가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뜻을 이루게 해서 마치 본성이 저절로 그러하듯 하면 백성들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요순이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을 흡족히 여겨서 가지런히 그들과 대등해지려 하겠는가? 욕심이 덕과 같아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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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0[장자(외편)] 第12篇 天地(천지) 10.최상의 정치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10/16)|작성자 swings81